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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개의 글을 찾았어요

당신은 아직 시내산에 있나요

많은 믿는 이들이 엉뚱한 산기슭에 천막을 치고 살아가요. 성경은 두 개의 영적인 자리를 나란히 놓아요. 시내산과 시온산이에요. 시내산은 율법이 주어진 곳이에요. 거리감과 천둥과 떨림의 자리예요. 얼마나 무서웠던지, 하나님의 친구였던 모세조차 흔들렸어요.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히브리서 12:21 (...

먼저 앉으라 하셨어요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가는데, 우리 마음은 예전보다 더 답답하고 좁아졌어요. 위기가 닥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속도를 올려요.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끌어모으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서 어떻게든 문제를 풀어 보려고 하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순서를 보여 주세요. 먼저 앉고, 그다음에 받는 거예요.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 앞에는 큰 무리...

하나님은 성과를 원하지 않으세요

사람들은 대개 자기를 더 몰아붙여서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해요. 더 절제하고, 더 애쓰고, 더 진심을 짜내면서요. 그런데 진실은 다른 쪽에 있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한일서 5:3 (개역한글) 왜 무겁지 않을까요?새 언약은 시내 산이 명령하던 방식으로 명령하지 않기 때문...

하나님이 나에게 실망하셨을까요?

또 넘어졌어요. 그런데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넘어진 그 일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이었어요. “많이 실망하셨겠지.” 이 한 문장은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슴 한구석에 품어 봐요. 무신론자의 당당한 반박도 아니고, 신학자의 논쟁도 아니에요. 그저 혼자 삼키고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는 두려움이에요. 나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이 이제는 나를 보며 고개를...

아가페, 조건이 붙지 않는 사랑

헬라어에는 사랑을 가리키는 단어가 넷이에요. 우리말에는 하나예요. 이 단순한 사실 하나가 역사상 그 어떤 신학 논쟁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많이 만들어 냈어요.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해”라고 말해요. 그러고는 돌아서서 “난 피자를 사랑해”라고 말해요. 우리말은 두 문장을 같은 단어로 처리해요. 헬라어는 그러지 않아요. 헬라어에는 하나님의 사랑만을 가리키...

하나님이 집을 주시는 이유

하나님이 자신의 임재를 “집”이라 부르시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그저 어떤 장소라서가 아니에요.그곳이 우리를 덮어 주는 자리이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요한복음 14:2 (개역한글) 숨을 곳이 많다는 말씀이 아니에요.머물러 살 곳, 속할 곳이 많다는 말씀이에요. 세상은 소리와 조명과 사람들로 우리를 에...

두려움을 내어쫓는 일곱 가지 진리

의사는 공황 발작에 약을 처방해 줄 수 있어요. 상담사는 생각을 다시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고요. 그런데 성경은 그 둘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요. 두려움이 어디서 왔는지, 누가 그것을 이겼는지, 그리고 왜 그것이 더 이상 당신의 삶에 들어올 권리가 없는지를 말해 줘요. 두려움은 하나님이 성경에서 가장 여러 번 다루신 주제예요. “두려워 말라”는 말...

셀라, 우리가 잃어버린 멈춤

성경은 일흔네 번, 대부분의 독자가 그냥 지나치는 한 단어를 끼워 넣어요. 절 끝에 괄호 안에 조용히 앉아 있어서, 사람들은 각주쯤으로 여기고 넘어가요. 그런데 그 작은 단어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실용적인 지시라면 어떨까요? 그 단어는 셀라예요. 시편에 일흔한 번, 하박국에 세 번 나와요. 다른 책에는 없어요. 설명해 주는 선지자도 없고, 정의해 주는 사도...

시내산을 떠나세요

두 산에 동시에 살 수는 없어요. 히브리서 12장은 율법이 주어진 시내산을 무섭도록 생생하게 그려요. 캄캄함과 흑암과 폭풍의 자리였어요. 산은 불에 타올랐어요. 심판의 공기가 어찌나 무거웠던지, 짐승이라도 그 산에 닿으면 죽임을 당했어요. 율법과 은혜를 섞으려 할 때,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시내산으로 되돌아가 서게 돼요. 그러면 곧바로 불화살이 날아들기 시...

천천히 빚어지는 사람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가 한 번도 "영적"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은 자리에서 일어나곤 해요. 빨간 신호등 앞, 줄어들지 않는 계산대 줄, 앞서 가는 느린 차, 그리고 오늘 계획해 둔 속도를 툭 끊어 놓는 예기치 못한 일들 같은 곳에서요. 과학이 이제야 확인해 주는 사실을, 성경은 오래전부터 말해 왔어요.서두르고 조급한 삶은 몸을...

샬롬, 평강이라는 말로는 부족해요

대부분의 사람은 샬롬을 "평강"이라고 옮겨요. "집"이라는 말을 "건물"이라고 옮기는 것과 비슷해요. 틀린 말은 아니에요. 다만 한참 모자라요. 샬롬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가장 풍성한 단어 가운데 하나예요. 구약에 250번 넘게 나와요. 날마다 주고받는 인사였고, 군대 앞에 선포된 말이었고, 선지자들이 약속한 말이었고, 하나님의 이름 가운데 하나에도 들어 있...

진리라는 자를 대어 보세요

위의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눈은 선들이 기울어져 있다고 말해요. 줄이 비뚤어져서 한쪽은 내려앉고 다른 쪽은 솟아오른 것처럼 보이죠. 머리는 이미 확신해요. 이 구조는 삐딱하고 고르지 않다고요. 그런데 그 가로선 아무 데나 자를 한번 대어 보세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돼요. 그 선들은 완벽하게 곧아요. 눈이 우리를 속이고 있는 거예요. 내가 본 것...

성찬, 깨어진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자리

아담이 넘어졌을 때, 세상 안으로 무언가가 들어왔어요 —죄를 향한 하나님의 선고요.몸과 마음, 그리고 피조물 전체에까지 번진 깨어짐이요. 바울은 이렇게 말해요: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11:32 (개역한글) 세상은 이미 정죄 아래 있어요.내 개인의 잘못 때문이...

끝까지 남는 사랑

끌림과 사랑은 무엇이 다를까요? 끌림은 사람을 이용하지만, 사랑은 상대에게 가장 좋은 것을 구해요. 이렇게 갈려요. 끌림은 붙잡아요.사랑은 내어 줘요. 끌림은 묻죠. “내가 너한테서 뭘 얻을 수 있지?”사랑은 이렇게 생각해요. “내가 무언가를 치르더라도, 너를 온전하게 하는 건 뭘까?”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5 (개역한글...

사랑받는 줄 알면 없던 힘이 나와요

힘이 늘 절제와 훈련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에요.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 때 솟아나기도 해요. 요한복음 21장에서 제자들은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어요.그런데 예수님이 나타나시자 그물에 고기가 가득 찼어요. 너무 무거워서 배 안으로 끌어올릴 수조차 없었죠. 그다음에 놀라운 일이 벌어져요.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

저주를 남기지 않은 피

많은 신자들이 마음 한구석이 흔들린 채로 성찬을 받았어요.“나는 정말 용서받았을까?”“내 삶에 아직 저주가 남아 있는 건 아닐까?”“하나님이 아직 내게 무언가를 담아 두고 계신 건 아닐까?” 그런데 예수님은 이 문제를 단번에 끝내셨어요. 잔을 드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

하나님의 사랑의 언어

우리에겐 저마다 사랑받고 싶은 방식이 있어요. 하나님도 다르지 않으세요.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하시는지, 하나님은 아주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예수님은 "나를 기념해서 기념비를 세우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누가복음 22:19 (개역한글) 여기서 "이를"은 성찬을 가리켜요. 떡과 잔이에요. 우리가...

휘장이 걷히면 공급이 와요

우리는 은혜를 한 번 일어난 역사적 사건으로, 혹은 잔고가 정해진 통장처럼 생각할 때가 많아요.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 쓰는 무언가로요. 그런데 성경이 그리는 그림은 훨씬 더 살아 움직여요.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가져오고 있는 은혜에 소망을 온전히 두라고 말해요.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

성찬, 기억을 넘어 참예로

성찬은 의식도 상징도 아니에요. 성경은 성찬을 기억하는 일이라고 말해요.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누가복음 22:19 (개역한글) 그런데 바울은 훨씬 더 깊은 단어를 골라요. (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 — “친밀한 참여”.언약의 언어에 속한 말이에...

보이는 것의 덫

성경에서 가장 이상한 모순 가운데 하나예요. 조금 전까지 엘리야는 갈멜산 위에 서 있었어요.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한 나라의 거짓 선지자들을 모조리 무너뜨렸어요. 두려움이라곤 없었어요. 그는 이렇게 선포했어요.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열왕기상 17:1 (개역한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그에게는 너무도 생생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