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를 남기지 않은 피

많은 신자들이 마음 한구석이 흔들린 채로 성찬을 받았어요.
“나는 정말 용서받았을까?”
“내 삶에 아직 저주가 남아 있는 건 아닐까?”
“하나님이 아직 내게 무언가를 담아 두고 계신 건 아닐까?”
그런데 예수님은 이 문제를 단번에 끝내셨어요.
잔을 드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마태복음 26:28 (개역한글)
값은 이미 치러졌어요.
다 이루어졌어요.
끝났어요.
바울도 똑같이 말해요.
에베소서 1:7 (개역한글)
“받았으니”예요. 받게 될 거라는 말이 아니라, 이미 받았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결론을 내려요.
갈라디아서 3:13 (개역한글)
여기 쓰인 말이 (엑세고라센) ἐξηγόρασεν — “값을 치르고 사서 건져내셨다”예요. 이미 끝난 일을 가리키는 동사고, 개역한글은 이것을 “속량하셨으니”로 옮겼어요. 언젠가 하실 일이 아니라, 이미 하신 일이에요.
몇몇 저주만이 아니에요.
일부만도 아니에요.
“거의 다”도 아니에요.
모든 저주예요.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모든 사슬.
모든 참소.
심판의 모든 그림자.
“이건 너희 집안 내력이야”라고 속삭이는 모든 거짓말.
“이제 너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겁주는 모든 두려움.
그 피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지 않아요.
그 피는 용서를 선포해요.
그 피는 복을 달라고 매달리지 않아요.
그 피는 저주가 끊어졌다고 선언해요.
성찬에 힘이 있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용서받기 위해 마시는 게 아니에요.
이미 용서받았기에 마시는 거예요.
저주가 풀리기를 바라며 잔을 드는 게 아니에요.
이미 풀린 것을 알고 잔을 드는 거예요.
그 잔은 하나님께 당신의 죄를 상기시키지 않아요 —
당신의 마음에 당신의 자유를 상기시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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