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 기억을 넘어 참예로

성찬은 의식도 상징도 아니에요. 성경은 성찬을 기억하는 일이라고 말해요.
누가복음 22:19 (개역한글)
그런데 바울은 훨씬 더 깊은 단어를 골라요. (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 — “친밀한 참여”.
언약의 언어에 속한 말이에요. 함께 나누는 삶, 함께 나누는 이야기, 함께 주고받는 사귐이죠.
고린도전서 10:16 (개역한글)
개역한글은 이 단어를 “참예함”으로 옮겼어요. 성경을 펴서 직접 확인해 보세요. 누가복음에서는 “기념하라”였지만, 고린도전서에서는 “참예함”이에요.
성찬은 멀찍이 떨어져 옛일을 떠올리는 순간이 아니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함께 참예하는 자리예요.
떡을 먹을 때, 우리는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셨다는 사실만 떠올리는 게 아니에요.
그 채찍이 이루어 낸 것을 받아 누리는 거예요. 이사야가 말한 그대로요.
이사야 53:5 (개역한글)
잔을 마실 때,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분의 피가 이미 확보해 놓으신 것을 받는 거예요.
에베소서 1:7 (개역한글)
우리가 애써 가까이 다가가려는 게 아니에요.
이미 우리를 안으로 데려오신 그분께 응답하는 거예요.
성찬은 우리가 해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들어가 누리는 선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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