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장이 걷히면 공급이 와요

우리는 은혜를 한 번 일어난 역사적 사건으로, 혹은 잔고가 정해진 통장처럼 생각할 때가 많아요.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 쓰는 무언가로요. 그런데 성경이 그리는 그림은 훨씬 더 살아 움직여요.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가져오고 있는 은혜에 소망을 온전히 두라고 말해요.
원어에서 “가져올”에 해당하는 말은 현재형이에요. 앞으로 언젠가 받을 은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가져와지고 있는 은혜라는 뜻이에요. 한 번 뚝 떨어지고 마는 선물이 아니라, 끊이지 않고 흘러드는 호의예요.
그렇다면 이 일은 언제 일어날까요? 개역한글이 “나타나실 때에”라고 옮긴 바로 그 지점이에요.
여기서 ‘나타나심’으로 번역된 말은 (아포칼륍시스) ἀποκάλυψις — “덮개를 벗겨 드러냄”이에요.
걸작 앞에 드리워 있던 천이 스르르 걷히는 장면을 떠올리면 돼요. 없던 것이 생기는 게 아니라, 이미 거기 있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게다가 본문이 쓰는 전치사는 (엔) ἐν — “안에서”예요. 은혜는 예수님이 드러나시는 그 안에서 당신에게 옵니다.
예수님이 이 땅을 걸으실 때, 모든 기적은 한 사람의 구체적인 필요 앞에서 자신이 누구신지를 벗겨 보이신 사건이었어요. 굶주린 무리에게 그저 떡을 주신 게 아니라, 생명의 떡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어요. 오라비를 잃고 우는 마르다에게는 부활이요 생명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어요. 눈먼 사람에게는 세상의 빛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어요.
예수님의 새로운 면을 볼 때마다, 새로운 은혜의 공급이 도착해요. 오늘 무언가 모자란 자리에 서 있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건 이를 악물고 짜낸 해결책이 아니에요. 휘장이 걷히는 일이에요.
그분이 선명하게 보이면, 필요한 공급은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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