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가는데, 우리 마음은 예전보다 더 답답하고 좁아졌어요. 위기가 닥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속도를 올려요.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끌어모으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서 어떻게든 문제를 풀어 보려고 하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순서를 보여 주세요. 먼저 앉고, 그다음에 받는 거예요.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 앞에는 큰 무리가 있었지만 먹을 것은 없었어요. 예수님은 당황하지도 않으셨고, 사람들을 사방으로 내보내 먹을거리를 구해 오게 하지도 않으셨어요. 대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요한복음 6:10 (개역한글)

개역한글이 "앉게 하라"로 옮긴 헬라어는 (anaklinō) ἀνακλίνω — "몸을 기대어 눕다"예요.

이건 쉼의 자세예요. 공급이 나타나기 전에 사람들은 먼저 자기 자리를 잡아야 했어요. 우리는 복을 받으려면 바빠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목자는 우리를 먼저 푸른 풀밭에 누이세요. 풍성함 한가운데서 몸을 기대어 앉을 때, 당신은 자기 마음에 이렇게 말해 주는 셈이에요. 모자람보다 채우심이 크다고요.

잔디는 "많"았어요. 넉넉했어요. 푸른 풀밭에 누운 양이라면, 말 그대로 자기 양식 위에 앉아 있는 거예요.

시편에서도 같은 순서를 봐요.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시편 91:1 (개역한글)

개역한글이 "거하는"으로 옮긴 히브리어는 (yashav) יָשַׁב — "앉다, 머물다"예요.

공급은 자리를 따라와요.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만 하면, 고요함 속에서 오는 방향을 놓쳐요. 앉아서 공급을 받을 때, 비로소 손은 무엇을 할지 알고 발은 어디로 갈지 알게 돼요.

쉼은 일을 잘 마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니에요. 잘 사는 삶이 시작되는 자리예요.

공급보다 자리가 먼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