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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어: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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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자꾸 나 같은 사람을 부르실까요

기드온은 포도주 틀 안에 숨어 있었어요. 모세는 하나님께 다른 사람을 보내시라고 했고요. 예레미야는 자기가 너무 어리다고 했어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세 사람인데, 셋 다 하나같이 자기는 그 일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믿었어요. 자신 없음은 현대인만 앓는 병이 아니에요. SNS나 인사평가와 함께 생겨난 것도 아니고요. 아담과 하와가 처음으로 자기가 벗은...

그리스도만 채울 수 있는 빈 자리

새벽 한 시, 한 청년이 침대에 누워 얼굴에서 한 뼘 거리에 휴대폰을 들고 있어요. 해변에 있는 어떤 여자, 친구가 새로 뽑은 차,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도시에 사는 낯선 사람의 집이 손끝을 따라 지나가요. 폰을 내려놓고, 다시 집어 들고, 또 넘겨요. 내일은 오늘 밤보다 기분이 더 나쁠 거예요. 그는 남의 삶을 빌려 살아요.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죽음이 정할 수 없는 것

사도 바울은 죽음을 언제 덮칠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원수로 보지 않았어요. 갑작스러운 사고나 불치병을 두려워하며 살지도 않았고요. 그는 이 세상을 떠나는 일을 자기가 의식적으로 고르는 일처럼 말했어요. 로마의 감옥에 갇힌 채, 그는 저울질을 하고 있었어요.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당신은 작은 인생을 위해 지어지지 않았어요

우리 대부분은 하루하루를 이렇게 보내요. 일하고, 볼일을 보고, 가끔 쉬는 날이 오면 어디론가 다녀오고요.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전혀 다른 것을 준비해 두셨어요. 당신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당신의 일생보다 더 큰 운명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바울은 하나님의 꿈을 이렇게 그려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

군중 속에서 혼자일 때

사람으로 가득한 방에 앉아 있으면서도 혼자일 수 있어요. 북적이는 사무실, 꽉 찬 예배당, 온 식구가 둘러앉은 저녁 식탁 — 그런데도 내 옆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는 것 같아요. 외로움은 주변에 사람이 몇 명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와, 누군가에게 제대로 알려지고 있다고 느끼는 자리 사이의 거리 문제예요. 성경은 이 주제를 피해 가...

하나님이 나에게 실망하셨을까요?

또 넘어졌어요. 그런데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넘어진 그 일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이었어요. “많이 실망하셨겠지.” 이 한 문장은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슴 한구석에 품어 봐요. 무신론자의 당당한 반박도 아니고, 신학자의 논쟁도 아니에요. 그저 혼자 삼키고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는 두려움이에요. 나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이 이제는 나를 보며 고개를...

아가페, 조건이 붙지 않는 사랑

헬라어에는 사랑을 가리키는 단어가 넷이에요. 우리말에는 하나예요. 이 단순한 사실 하나가 역사상 그 어떤 신학 논쟁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많이 만들어 냈어요.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해”라고 말해요. 그러고는 돌아서서 “난 피자를 사랑해”라고 말해요. 우리말은 두 문장을 같은 단어로 처리해요. 헬라어는 그러지 않아요. 헬라어에는 하나님의 사랑만을 가리키...

당신에게 넘어온 권세

법적으로든 구조적으로든, 권세는 느껴서 생기는 게 아니에요. 대신해서 서는 자리예요.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다고 말씀하셨고, 그 신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그대로 맡기셨어요.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누가복음 10:19 (개역한글) 이건 실제로 작동하는 위임이에요. 한 나라가 자기 국...

지성소의 언어

우리는 영과 혼과 몸, 세 부분으로 지어진 존재예요. 옛 성막의 구조가 그대로 겹쳐요. 바깥뜰은 몸, 성소는 혼, 그리고 지성소는 영이에요. 우리 삶의 대부분은 앞의 두 곳에서 흘러가요. 몸으로 느끼는 것에 매이고, 머리로 따지고 헤아리는 것에 붙들려 살아요. 그런데 방언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지성소에서 움직이게 돼요. 속사람, 곧 영이 일하는 자리예요....

마귀가 빼놓은 한 마디

요단강에서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 부르신 직후, 예수님은 광야로 들어가셨어요. 그리고 마귀가 시험하러 왔어요. 겉으로 보면 주린 배와 권세에 관한 시험 같지만, 진짜 싸움터는 정체성이었어요. 마귀가 쓴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

두려움을 내어쫓는 일곱 가지 진리

의사는 공황 발작에 약을 처방해 줄 수 있어요. 상담사는 생각을 다시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고요. 그런데 성경은 그 둘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요. 두려움이 어디서 왔는지, 누가 그것을 이겼는지, 그리고 왜 그것이 더 이상 당신의 삶에 들어올 권리가 없는지를 말해 줘요. 두려움은 하나님이 성경에서 가장 여러 번 다루신 주제예요. “두려워 말라”는 말...

잘 지킨 게 충성은 아니에요

우리는 안전하게 지키는 것을 청지기의 충성으로 착각할 때가 많아요. 므나 비유에서 한 귀인이 왕위를 받으러 먼 나라로 떠나요. 떠나기 전에 종들에게 돈을 맡기고 분명한 명령 하나를 남기지요.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누가복음 19:13 (개역한글) 돌아온 주인은 종들을 하나씩 평가해요. 첫째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어요. 칭찬을 듣고 열 고을을...

힘이 아니라 권세예요

우리는 목소리 큰 것을 가치로, 힘센 것을 효과로 착각할 때가 많아요. 상황을 바꾸려면 더 센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힘과 권세 사이에는 깊은 차이가 있어요. 복잡한 교차로 한복판에 서 있는 경찰관을 떠올려 보세요. 체구는 작을 수 있어요. 누가 보기엔 왜소하다 싶을 정도일지도 몰라요. 십 톤짜리 트럭을 몸으로 막아 세울 근력은 당연히 없고요...

성경이 말하는 자존감: 당신의 값은 십자가가 정했어요

직함은 회의 한 번으로 바뀔 수 있어요. 관계는 대화 한 번으로 끝날 수 있고요. 소셜 미디어의 독자는 알고리즘이 한 번 바뀌면 사라져요. 내 가치가 이런 것들 위에 얹혀 있다면, 그건 계속 움직이는 바닥 위에 서 있는 거예요. 성경은 사람의 가치를 토론거리로 남겨 두지 않아요. 맨 처음, 창세기 1장에서 답하고, 십자가에서 다시 한 번 답해요. 하나님은...

입에 실린 권세

사람은 생명을 말하는 데 서툴러요. 우리는 겨우 식욕 하나를 표현하려고 무덤의 언어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 쓰지요. 배가 고프면 "밥 안 먹으면 죽겠다"고 하고, 시험을 망친 학생은 "아, 나 죽었다"고 해요. 한 끼 식사, 잠깐 지나갈 문제 앞에서 우리는 끝장의 언어를 써요. 너무 자주 쓰다 보니 이상한 일이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그런데 하나님...

제국의 명령을 이긴 한 마디

주후 70년, 로마의 장군 티투스는 예루살렘의 그 웅장한 성전을 보존하라고 군대에 명령했어요. 그의 손에는 거대한 제국의 군사력이 쥐어져 있었고요. 그런데 그보다 사십 년 앞서, 예수님은 한 산에 서서 전혀 다른 결말을 선포하셨어요. 바로 그 성전의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으리라고요. 왕의 두 아들이 서로 어긋나는 말을 내놓은 셈이에요. 로마 황제의 아...

하나님은 왜 혼란을 멈추지 않으실까

하나님은 걸작을 지으셨어요. 하늘과 땅을 다 지으신 뒤에 그냥 좋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심히 좋았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위험해 보이는 일을 하셨어요. 그 열쇠를 사람의 손에 쥐어 주신 거예요. 하나님은 사람에게 다스림을 주셨어요. 땅에 대한 권세를 우리에게 맡기셨어요. 그런데 가슴 아픈 반전이 일어났어요. 첫 사람 아담이 사칭하는 자의 편에 선 거...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을까요?

법정은 이미 판결을 내렸어요. 판사는 자리에서 내려갔고, 판결봉도 울렸어요. 그런데 피고인이 다시 일어나 이렇게 물어요. “그런데… 정말 확실한가요?” 자기 구원을 의심하는 신자의 모습이 꼭 이래요.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잃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진실한 신자들을 정신과 진료실까지 데려갔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담대함을 빼앗았고, 기쁜 소식을...

당신의 폭풍에게 말하세요

자연은 그저 배경 그림이 아니에요. 성경에 따르면 피조물은 살아 있고, 느끼고, 아파하고 있어요. 땅은 타락의 무게 아래서 신음하고 있어요.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한 건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길을 잃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지금 피조물은 발끝을 든 채로, 어떤 한 가지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하나님이 내려오시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에요...

용서, 값은 이미 다 치러졌어요

법정과 십자가는 같은 말을 해요. 빚은 다 갚아졌다는 말이요. 다른 점이 있다면, 십자가는 앞으로 믿게 될 모든 사람의 빚까지 갚았다는 거예요. 그들이 태어나기 이천 년 전에요. 용서는 자기계발서 선반에서 막 꺼내 온 참신한 발상이 아니에요. 성경의 중심 사건이에요. 에덴에서 빈 무덤까지, 성경 전체의 흐름은 한 사건을 향해 달려가요. 하나님이 인류가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