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에서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 부르신 직후, 예수님은 광야로 들어가셨어요. 그리고 마귀가 시험하러 왔어요. 겉으로 보면 주린 배와 권세에 관한 시험 같지만, 진짜 싸움터는 정체성이었어요.

마귀가 쓴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태복음 4:3 (개역한글)

마귀는 결정적인 한 마디를 빼놓았어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어든"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사랑하는"을 지운 거예요. 아버지께서 하늘을 열고 하신 말씀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마태복음 3:17, 개역한글)였는데 말이에요. 여기서 "사랑하는"으로 옮긴 말이 (아가페토스) ἀγαπητός — "사랑받는, 마음에 품은"이에요.

원수는 알고 있어요. 하나님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당신이 기억하는 순간, 시험은 힘을 잃는다는 걸요.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아요.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자기 시험이 무너지니까요. 그는 당신이 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만들기 전에, 먼저 아버지의 마음을 의심하게 만들어야 해요.

내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인 줄 알면, 내 가치를 증명하려고 돌을 떡으로 바꿀 필요가 없어요. 엉뚱한 자리에서 만족을 구할 이유도 없어요. 이미 그분의 사랑으로 배부르니까요. 원수의 첫째 전략은 당신의 사전에서 "사랑하는"이라는 말을 지워 버리는 거예요. 당신의 방어는 그 말을 마음 한복판에 붙들어 두는 거고요.

원수의 첫째 목표는 당신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