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그저 배경 그림이 아니에요. 성경에 따르면 피조물은 살아 있고, 느끼고, 아파하고 있어요.

땅은 타락의 무게 아래서 신음하고 있어요.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한 건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길을 잃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지금 피조물은 발끝을 든 채로, 어떤 한 가지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하나님이 내려오시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자라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로마서 8:19 (개역한글)

여기서 “아들들”로 옮겨진 말은 (후이오스) υἱός — “장성한 아들”이에요.

어린아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에요. 자기가 받은 기업이 무엇인지, 자기에게 주어진 권세가 무엇인지 아는 성숙한 아들과 딸을 가리켜요.

피조물은 왜 기다릴까요? 장성한 아들에게는 썩어짐의 종노릇을 끊어낼 힘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깨달음은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내가 누구인지 아는 순간, 목소리가 달라져요. 혼란을 중계하던 입이 평안을 명령하기 시작해요. 말라붙은 상황에게, 몸의 병에게, 집안에 몰아치는 폭풍에게 직접 말을 걸게 돼요.

세상은 당신이 누구인지 깨닫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야 비로소 당신의 말에 순종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