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과 혼과 몸, 세 부분으로 지어진 존재예요. 옛 성막의 구조가 그대로 겹쳐요. 바깥뜰은 몸, 성소는 혼, 그리고 지성소는 영이에요.

우리 삶의 대부분은 앞의 두 곳에서 흘러가요. 몸으로 느끼는 것에 매이고, 머리로 따지고 헤아리는 것에 붙들려 살아요. 그런데 방언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지성소에서 움직이게 돼요. 속사람, 곧 영이 일하는 자리예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유다서 1:20 (개역한글)

유다는 왜 “지극히 거룩한”이라고 말했을까요? 그것이 지극히 거룩한 곳에서 나오기 때문이에요.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 우리는 지성의 한계를 지나쳐 가요. 마음은 그 소리를 알아듣지 못해 “열매를 맺히지 못”할 수 있어요. 그래도 영은 하나님과 곧바로 통하고 있어요.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고린도전서 14:14 (개역한글)

이 은사는 감정을 끌어올리는 일이 아니에요.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성소에서 강물이 흘러나오도록 길을 내어 주는 일이에요. 머리가 지쳐 있을 때 영을 다시 채우는 “안식”이고 “상쾌함”이에요. 우리 가장 깊은 자아의 언어가, 하나님과 하나 된 그 자리에서 성령을 만나는 거예요.

마음은 참 좋은 도구예요. 그러나 권세가 앉는 자리는 영이에요.

머리가 멈춰 선 자리에서도, 당신의 영은 여전히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