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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어: “중독”

12개의 글을 찾았어요

그리스도만 채울 수 있는 빈 자리

새벽 한 시, 한 청년이 침대에 누워 얼굴에서 한 뼘 거리에 휴대폰을 들고 있어요. 해변에 있는 어떤 여자, 친구가 새로 뽑은 차,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도시에 사는 낯선 사람의 집이 손끝을 따라 지나가요. 폰을 내려놓고, 다시 집어 들고, 또 넘겨요. 내일은 오늘 밤보다 기분이 더 나쁠 거예요. 그는 남의 삶을 빌려 살아요.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아가페, 조건이 붙지 않는 사랑

헬라어에는 사랑을 가리키는 단어가 넷이에요. 우리말에는 하나예요. 이 단순한 사실 하나가 역사상 그 어떤 신학 논쟁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많이 만들어 냈어요.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해”라고 말해요. 그러고는 돌아서서 “난 피자를 사랑해”라고 말해요. 우리말은 두 문장을 같은 단어로 처리해요. 헬라어는 그러지 않아요. 헬라어에는 하나님의 사랑만을 가리키...

싸움이 끝나는 자리

우리는 흔히 해방을 의지력의 처절한 싸움으로 생각해요. 이를 악물고 습관을 끊어내려 하고, 하루만 더 버텨 보자며 갈망을 밀어내죠. 그런데 육체라는 건 참 끈질겨요.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더 세게 되밀어 오는 것 같아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16 (개역한글) 더 높은 길이 있어요. 사람들이 성령으로...

우리가 죄를 짓는 진짜 이유

우리는 왜 죄를 지을까요? 왜 스스로도 싫어하는 습관과 행동에 자꾸 발이 묶일까요? 흔히 의지력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착하게 살아 보려고 충분히 애쓰지 않아서라고 여기죠. 그런데 베드로는 뿌리가 전혀 다른 곳에 있다고 말해요. 바로 신뢰의 부재예요.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을까요?

법정은 이미 판결을 내렸어요. 판사는 자리에서 내려갔고, 판결봉도 울렸어요. 그런데 피고인이 다시 일어나 이렇게 물어요. “그런데… 정말 확실한가요?” 자기 구원을 의심하는 신자의 모습이 꼭 이래요.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잃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진실한 신자들을 정신과 진료실까지 데려갔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담대함을 빼앗았고, 기쁜 소식을...

멍에는 가벼워요, 끌지만 않으면

우리는 늘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에요. 움직이고, 애쓰고, 밀어붙이는 일에 중독되어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가끔 우리를 멈춰 세우세요. 전 세계가 문을 닫았던 그 시절, 세상은 낯선 정지 상태로 밀려 들어갔어요. 기술 덕분에 시간과 공간을 훌쩍 넘나들면서도, 정작 몸은 집 안에 갇혀 있었죠. 그건 제약처럼 느껴졌지만, 사실은 다시 맞추는 시간이었어요. 하...

죄책감은 왜 그 자리로 다시 데려갈까요

사람들은 대개 죄책감이 변화를 만든다고 생각해요.하지만 죄책감이 자유를 낳는 일은 드물어요. 죄책감이 낳는 건 반복이에요. 중독에 매인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면 늘 같은 게 보여요.그 뿌리에 죄책감이 앉아 있어요. 이유는 이거예요.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로마서 6:14 (개역한글) 율법은 죄책...

그 생각은 당신이 아니에요

원수가 즐겨 쓰는 수법 중 하나는 '나'라는 말이에요. 어두운 생각 하나가 마음에 들어와요. 두려움일 수도, 중독일 수도, 절망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곧바로 이렇게 생각하죠. "나는 중독자야." "나는 우울해." "나는 제정신이 아니야." 그 순간 당신은 그 생각을 내 것으로 삼은 거예요. 그것을 내 정체성으로 받아들인 거죠. 하지만 어떤 생각이 문을 두...

느낌이 곧 당신은 아니에요

많은 믿는 이들 마음속에서 줄다리기가 벌어져요.감정은 이쪽으로 당기고,복음은 저쪽으로 당겨요. 바울은 이렇게 말해요.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린도후서 5:21 (개역한글) 여전히 중독에 매여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들...

은혜는 말싸움하지 않아요

교리를 두고 벌이는 논쟁이 사람을 바꾸는 일은 드물어요.하지만 달라진 한 사람의 삶은 그렇지 않아요.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열어 주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논쟁을 벌였어요.정작 눈을 뜬 그 사람은 논쟁하지 않았어요.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요한복음 9:25 (개역한글) 은혜는 그런 일을 해요.비판보다 오래 남는 이야...

은혜는 낫게 하고, 지혜는 지켜요

베데스다에서 그 사람을 고치신 뒤, 예수님은 그를 다시 찾아오셨어요. 꾸짖으시려고 오신 게 아니에요.부끄럽게 하시려고 오신 것도 아니에요.지켜 주시려고 오신 거예요.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한복음 5:14 (개역한글) 이 말씀은 협박이 아니에요 — 건져 내시는 손길이에요. 성경은 모든 병이 죄 때문이라고 가...

의지력보다 강한 한 문장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길이 처음에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어요.오히려 너무 단순해서 미덥지 않을 정도예요. 어떤 분은 이렇게 물어요. “아직도 이렇게 씨름하고 있는데,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다라고 선포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 그 물음에 성경이 답해요.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브리서 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