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안전하게 지키는 것을 청지기의 충성으로 착각할 때가 많아요.

므나 비유에서 한 귀인이 왕위를 받으러 먼 나라로 떠나요. 떠나기 전에 종들에게 돈을 맡기고 분명한 명령 하나를 남기지요.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누가복음 19:13 (개역한글)

돌아온 주인은 종들을 하나씩 평가해요. 첫째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어요. 칭찬을 듣고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아요. 둘째 종은 다섯 므나를 남겨 다섯 고을을 받고요.

그런데 셋째 종은 안전한 길을 택했어요. 돈을 수건에 싸서 감춰 두었지요.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누가복음 19:20 (개역한글)

그는 자기가 신중하다고 생각했어요. 맡은 것을 잘 지켰다고 여겼어요. 그런데 주인은 그를 악한 종이라고 불러요.

왜 그럴까요? 그가 열매가 아니라 두려움에서 움직였기 때문이에요.

주인은 이렇게 물어요.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와서 그 변리와 함께 찾았으리라” (누가복음 19:23, 개역한글).

여기에 순서가 있다는 걸 눈여겨보세요. 주인의 셈법에서 은행에 맡기는 건 최소한이에요. 투자할 안목도 용기도 없는 사람에게나 남겨진 가장 낮은 기준이지요. 가장 큰 칭찬은 위험을 무릅쓰고 배로 남긴 사람에게 돌아가요.

하나님이 돈과 재능과 시간을 주신 건 감춰 두라고 주신 게 아니에요. 문제를 풀고, 가치를 만들고, 맡기신 살림을 넓히라고 주셨어요.

달란트를 땅에 묻는 건 겸손이 아니에요. 낭비예요.

목표는 가진 것을 지키는 게 아니라, 맡겨진 것을 배로 남기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