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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어: “신학”

16개의 글을 찾았어요

밥상 앞에서 성분표를 읽진 않잖아요

오늘 점심에 뭘 먹었는지 떠올려 보세요. 이제 거기 들어 있던 비타민을 적어 보세요. 닭고기의 아미노산 구성을 말해 보세요. 그 온도에서 기름이 밥알에 무슨 일을 했는지 설명해 보세요. 못 하죠. 그런데 그게 한 번도 먹는 걸 막은 적은 없어요. 그냥 앉아서, 맛있게 먹었고, 몸은 우리 허락을 구하지 않고 알아서 그 화학 작용을 다 해냈어요. 그런데 성경을...

소조: 구원, 치유, 자유가 한 단어예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구원"이라는 말을 알아요. 그런데 그 말 뒤에 있는 그리스어 (소조) σῴζω 가 "고침받다", "건짐받다", "온전해지다", "지켜지다"라는 뜻까지 함께 지고 있다는 건 잘 모르지요. 한 단어가 그 전부를 품고 있어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구원을 당신의 영혼에서 멈추게 하실 생각이 없으셨다는 뜻이기 때문이에요....

단어 하나에 걸린 신학

우리는 성경을 커다란 생각들의 모음집처럼 대할 때가 있어요. 하나님이 큰 뜻은 주셨고, 세부적인 표현은 사람 저자들의 몫이었으리라 여기는 거죠. 그런데 정작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지 않았어요. 그들은 하나님이 단어 하나, 글자 하나까지 감동하셨다고 믿었어요. 이것이 완전축자영감의 교리예요. 성령께서 본문의 구체적인 단어들까지 이끄셨다는 뜻...

세 개의 문, 하나의 약

옛 도시는 성문에서 살고 성문에서 죽었어요. 파수꾼이 거기 섰고, 상인이 거기로 들어왔고, 적군이 노린 곳도 거기였어요. 성문을 통과한 것이 결국 성 안의 거리를 다스렸어요. 솔로몬은 성문을 잘 아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잠언 4장에서 아들에게 말해요. 사람의 몸에도 문이 있다고요.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머리는 가득, 마음은 텅

성경을 펴 놓고도 정작 그 책을 쓰신 분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정보만 산더미처럼 쌓을 수 있어요.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머리는 가득 채웠는데 마음은 텅 빈 채로 나올 수도 있고요. 성경은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고린도전서 8:1, 개역한글)라고 말해요. 지식은 부풀리지만, 계시는 세워요. 그 차이는 머리에 있지 않아요. 마음이...

하나님이 나에게 실망하셨을까요?

또 넘어졌어요. 그런데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넘어진 그 일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이었어요. “많이 실망하셨겠지.” 이 한 문장은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슴 한구석에 품어 봐요. 무신론자의 당당한 반박도 아니고, 신학자의 논쟁도 아니에요. 그저 혼자 삼키고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는 두려움이에요. 나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이 이제는 나를 보며 고개를...

아가페, 조건이 붙지 않는 사랑

헬라어에는 사랑을 가리키는 단어가 넷이에요. 우리말에는 하나예요. 이 단순한 사실 하나가 역사상 그 어떤 신학 논쟁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많이 만들어 냈어요.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해”라고 말해요. 그러고는 돌아서서 “난 피자를 사랑해”라고 말해요. 우리말은 두 문장을 같은 단어로 처리해요. 헬라어는 그러지 않아요. 헬라어에는 하나님의 사랑만을 가리키...

두려움을 내어쫓는 일곱 가지 진리

의사는 공황 발작에 약을 처방해 줄 수 있어요. 상담사는 생각을 다시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고요. 그런데 성경은 그 둘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요. 두려움이 어디서 왔는지, 누가 그것을 이겼는지, 그리고 왜 그것이 더 이상 당신의 삶에 들어올 권리가 없는지를 말해 줘요. 두려움은 하나님이 성경에서 가장 여러 번 다루신 주제예요. “두려워 말라”는 말...

셀라, 우리가 잃어버린 멈춤

성경은 일흔네 번, 대부분의 독자가 그냥 지나치는 한 단어를 끼워 넣어요. 절 끝에 괄호 안에 조용히 앉아 있어서, 사람들은 각주쯤으로 여기고 넘어가요. 그런데 그 작은 단어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실용적인 지시라면 어떨까요? 그 단어는 셀라예요. 시편에 일흔한 번, 하박국에 세 번 나와요. 다른 책에는 없어요. 설명해 주는 선지자도 없고, 정의해 주는 사도...

율법 아래인가, 은혜 아래인가

율법은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요. 은혜는 무엇이 이미 이루어졌는지 말해요. 한쪽은 당신에게 요구하고, 다른 한쪽은 당신에게 공급해요. 그리고 성경은 오늘 우리가 둘 중 어느 쪽 아래 살고 있는지 아주 분명하게 말해요. 로마서 6:14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지나가듯 들어 본 구절이에요. 그런데 그 말씀이 실제로 무엇을 선언하는지 멈춰 서서 생각해 본...

당신의 우울은 믿음의 실패가 아니에요

엘리야는 화요일에 하늘에서 불을 내렸어요. 그리고 수요일에는 나무 아래 주저앉아 하나님께 죽게 해 달라고 구했어요. 이건 믿음이 약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진짜 몸을 가지고, 진짜 한계를 가진 진짜 선지자의 이야기예요. 성경은 그 장면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록했어요. 엘리야를 망신 주려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바닥을 칠 때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

카리스, 은혜를 다시 정의하는 헬라어

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는 호의”라고 정의해요. 틀린 말은 아니에요. 다만 절반만 말한 셈이죠. 로마에 가서 분수 하나 보고 와서는 로마를 다 봤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신약에서 “은혜”로 옮겨진 헬라어는 (카리스) χάρις예요. 147구절에 걸쳐 156번 나와요. 바울이 이 단어를 썼고, 요한은 복음서 서문을 이 단어 위에 세...

아굴이 풀지 못한 네 가지

잠언 30장을 기록한 아굴은 지혜로운 사람이었어요. 그런데도 그는 자기로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것이 넷 있다고 솔직히 털어놓아요. “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공중에 날아 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 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 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며” 잠언 30:18-19...

염려에 대한 성경의 대답

정신의학 교과서와 복음서가 똑같은 말을 해요. 지금 이 순간을 살라는 거예요. 다른 점이라면, 복음서는 그 말을 이천 년 먼저 했다는 거예요. 염려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에요. SNS와 24시간 뉴스가 만들어 낸 현대의 병이 아니에요. 다윗은 시편에서 염려를 털어놓았고, 엘리야는 생애 최대의 승리 직후에 염려에 무너졌고, 바울은 날마다 염려를 짊어졌어요. 예...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마세요

우리는 구약을 읽다가 그저 옛날 농사 이야기쯤으로 여기고 넘겨 버릴 때가 많아요. 신명기 25:4를 보세요.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신명기 25:4 (개역한글) 짐승을 학대하지 말라는 규정처럼 들리죠. 실제로 그런 뜻도 있어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여기서 교회의 사례 원칙을 세우고 계신 거라고 말해요. 그는 아주 직설적으로...

무덤을 건너뛰는 세대

예수님은 죽음을 보는 눈을 바꾸는 구분 하나를 하셨어요. 마르다에게 말씀하실 때, 그분은 그저 뭉뚱그린 위로를 건네신 게 아니에요. 서로 다른 두 부류의 믿는 자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예언을 주셨어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