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도시의 운명은 성문에서 갈렸어요. 파수꾼이 거기 섰어요. 상인이 거기로 들어왔어요. 적은 거기를 노렸어요. 성문을 통과한 것이 성안의 거리를 지배했어요.

솔로몬은 성문을 알았어요. 그리고 잠언 4장에서 아들에게 사람의 몸에도 문이 있다고 말해요.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잠언 4:20-22 (개역개정)

그 명령을 천천히 읽어 보세요.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귀, 눈, 마음. 세 개의 문, 하나의 통로예요.

그다음 약속을 읽어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돼요. “건강”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marpe) מַרְפֵּא — “건강, 치유, 치료”예요. 의학 용어예요. 솔로몬은 말씀이 우리 신학을 좋게 만든다고 말하지 않아요. 몸을 고친다고 말해요. 그리고 이 약속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보세요. 온 육체예요. 강한 부분만이 아니에요. 이미 괜찮은 부분만도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으로 닿지 않는 육체의 부분은 없어요.

그러면 이 문들을 어떻게 열까요?

첫째 문: 귀. “네 귀를 기울이라”는 몸으로 하는 행동을 묘사해요. 놓치고 싶지 않은 소리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거예요. 성경을 소리 내어 읽어 보세요. 기름부음 받은 설교를 들어 보세요. 차 안에서 틀어 놓으세요. 내 목소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귀의 문으로 실어 보내세요.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귀를 기울이겠다는 결정에서 시작돼요.

둘째 문: 눈.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하루 종일 말씀을 눈앞에 두려면 어떻게 할까요? 솔로몬이 말하는 건 종이에 적힌 글자만이 아니에요. 성경은 믿음의 그림이 담긴 책이에요. 시편 1편은 나무처럼 심긴 사람을 보여 줘요: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3 (개역개정)

그 나무가 나라고 보세요. 뿌리는 물에 있어요. 열매는 철을 따라 맺혀요. 잠언 31장은 자기 집에서 존귀함을 받는 여인을 보여 줘요:

“그의 자식들이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잠언 31:28 (개역개정)

자식들이 복되다 하며 남편이 칭찬하는 그 어머니, 그 아내가 나라고 보세요. 그 그림 안에 서 있을 때 말씀이 눈에서 떠나지 않아요. 상상을 위한 상상이 아니에요. 성경이 이렇게 읽어 달라고 하는 거예요.

셋째 문: 마음. “네 마음 속에 지키라.” “속”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tavek) תָּוֶךְ — “가운데, 중심”이에요. 여기서 속은 중심이지 가장자리가 아니에요. 우리 중 많은 사람이 말씀을 삶의 가장자리에, 출구 가까이에, 잃어버리기 쉬운 자리에 두어요. 솔로몬은 모든 생각이 그 앞을 지나가야 하는 중심에 두라고 말해요. 실천하는 방법 하나: 한 구절을 하루 속으로 가지고 들어가세요. 점심에 그 구절로 돌아오세요. 밤에 다시 말해 보세요. 마음 중심에 자리 잡은 것이 그 마음을 지나가는 모든 것을 만들어요.

세 문이 모두 말씀에 열리면 22절이 일을 해요. 얻는 자에게 생명이 돼요.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돼요. 의사는 한 번에 한 기관을 치료해요. 하나님의 말씀은 온 육체를 한 번에 치료해요.

하나님의 약은 이름표가 하나이고 입구가 셋이에요. 듣는 것, 보는 것, 마음 중심에 지키는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