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하나에 걸린 신학

우리는 성경을 커다란 생각들의 모음집처럼 대할 때가 있어요. 하나님이 큰 뜻은 주셨고, 세부적인 표현은 사람 저자들의 몫이었으리라 여기는 거죠. 그런데 정작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지 않았어요. 그들은 하나님이 단어 하나, 글자 하나까지 감동하셨다고 믿었어요.
이것이 완전축자영감의 교리예요. 성령께서 본문의 구체적인 단어들까지 이끄셨다는 뜻이에요.
사도 바울은 단어 하나의 형태 위에 신학 전체를 세웠어요.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는 한 낱말이 단수냐 복수냐에 모든 것을 걸었어요.
갈라디아서 3:16 (개역한글)
바울이 붙든 것은 헬라어 한 단어의 형태였어요. (스페르마) σπέρμα — "씨, 자손"이라는 이 말이 복수 (스페르마신) σπέρμασιν — "자손들"으로 쓰이지 않고, 단수 (스페르마티) σπέρματι — "자손"으로 쓰였다는 사실이요. 개역한글도 이 차이를 "자손들"과 "네 자손"으로 또렷하게 옮겨 두었어요. 성경을 펴서 직접 확인해 보세요.
예수님도 똑같이 하셨어요. 사두개인들 앞에서 부활을 변호하실 때, 주님은 동사 하나의 시제를 짚으셨어요. 모세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마태복음 22:32, 개역한글). 헬라어로 이 말씀은 (에고 에이미) ἐγώ εἰμι — "나는 ~이다", 곧 지나간 일을 말하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을 말하는 현재예요. 개역한식으로도 "하나님이었노라"가 아니라 "하나님이로라"죠. 그 한 글자의 시제로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지금도 살아 있음을 증명하셨어요.
당신의 성경에 적힌 모든 단어가 중요해요. 하나님은 그 단어들을 정확하게 고르셨어요. 성경을 읽을 때 낱말 하나, 시제 하나, 사소해 보이는 표현 하나에 눈을 멈춰 보세요. 하나님은 그 작은 자리에서 말씀하세요.
하나님은 성경의 생각만 감동하신 것이 아니라, 그 단어 하나하나를 친히 고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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