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결과

검색어: “받음”

8개의 글을 찾았어요

십자가는 죄만 지지 않았어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대개 죄 사함을 먼저 떠올려요. 빚이 청산되었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지요. 그게 우리 믿음의 토대니까요. 그런데 십자가의 일은 그보다 더 온전했어요. 예수님은 우리의 죄만 지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질병과 아픔까지 함께 지셨어요. 육체의 치유는 대속에 포함되어 있어요. 마태복음은 이 연결을 분명하...

아가페, 조건이 붙지 않는 사랑

헬라어에는 사랑을 가리키는 단어가 넷이에요. 우리말에는 하나예요. 이 단순한 사실 하나가 역사상 그 어떤 신학 논쟁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많이 만들어 냈어요.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해”라고 말해요. 그러고는 돌아서서 “난 피자를 사랑해”라고 말해요. 우리말은 두 문장을 같은 단어로 처리해요. 헬라어는 그러지 않아요. 헬라어에는 하나님의 사랑만을 가리키...

부족이 아니라 후하심을 보세요

예수님이 제자들을 바로잡으실 때,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왜 더 오래 기도하지 않았느냐?”또는“왜 더 애쓰지 않았느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태복음 6:30 (개역한글) 나무라는 말이 아니었어요. 사랑이 섞인 한숨에 가까웠어요.“내게는 이렇게 많은데… 너는 왜 그렇게 조금만 가져가느냐.” 믿음은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애쓰는 게...

샬롬, 평강이라는 말로는 부족해요

대부분의 사람은 샬롬을 "평강"이라고 옮겨요. "집"이라는 말을 "건물"이라고 옮기는 것과 비슷해요. 틀린 말은 아니에요. 다만 한참 모자라요. 샬롬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가장 풍성한 단어 가운데 하나예요. 구약에 250번 넘게 나와요. 날마다 주고받는 인사였고, 군대 앞에 선포된 말이었고, 선지자들이 약속한 말이었고, 하나님의 이름 가운데 하나에도 들어 있...

이름을 다시 지어 주시는 아버지

당신의 정체성을 두고 벌어지는 싸움이 있어요. 그리고 그 싸움은 흔히 당신이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나요. 창세기에서 라헬은 해산하다가 죽어 가면서, 갓 태어난 아들을 자기 고통의 렌즈로 바라봤어요. 그리고 아이의 이름을 베노니 (벤오니) בֶּן־אוֹנִי — “내 슬픔의 아들”이라 불렀어요. 아이가 태어난 그 아픔으로 아이를 규정한 거예요. 자기...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에요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을 이렇게 그려요. 손을 내밀고 서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분으로요.그런데 진실은 정반대예요.이야기는 아주 단순하게 시작해요.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고, 우리는 받는 사람이에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가 적다고, 금식이 부족하다고 나무라신 적이 없어요. 대신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죠. “믿음이 적은 자들아...

가장 먼저 보아야 할 한 가지

히브리어로 “보다”를 뜻하는 말은 (하자) חָזָה — “보다”예요.그런데 이 말은 (하제) חָזֶה — “가슴”과 같은 뿌리에서 나왔어요. 제물로 드린 짐승의 가슴 부위를 가리키는 말이죠 (레위기 7:30-31, 개역한글은 이 말을 “가슴”으로 옮겼어요).그리고 그 가슴은 제사장에게 돌아가는 몫이었어요. 여기에 그림 하나가 숨어 있어요.하나님이 자기...

남은 진노는 없어요

가장 믿기 어려운 말이 사실은 가장 단순한 말일 때가 있어요.하나님은 당신에게 화가 나 계시지 않아요. 많은 신자들이 여전히 하나님이 무언가를 손에 들고 머리 위에서 벼르고 계신 것처럼 살아요. 심판을 예상하고, 형벌에 대비하며 몸을 움츠려요. 일이 틀어질 때마다 하나님이 묵은 빚을 받아 가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해요. “그가 찔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