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제자들을 바로잡으실 때,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왜 더 오래 기도하지 않았느냐?”
또는
“왜 더 애쓰지 않았느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태복음 6:30 (개역한글)

나무라는 말이 아니었어요. 사랑이 섞인 한숨에 가까웠어요.
“내게는 이렇게 많은데… 너는 왜 그렇게 조금만 가져가느냐.”

믿음은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애쓰는 게 아니에요.
믿음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 그대로를 믿어 드리는 거예요.

많은 신자가 느끼는 그 간격을, 야고보는 이렇게 짚어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야고보서 4:2 (개역한글)

하나님이 움켜쥐고 계신 게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가 받기를 망설이는 게 문제예요.

내게 없는 것에 시선이 붙잡히면 믿음은 쪼그라들어요.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것을 바라보면 믿음은 힘들이지 않고도 넓어져요.

예수님은 애쓰지 않아도 입혀지는 백합화를, 걱정하지 않아도 먹여지는 새를 가리키세요. 우리를 부끄럽게 하시려는 게 아니라, 우리 눈을 옮겨 주시려고요.

“공중의 새를 보라”
마태복음 6:26 (개역한글)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버지가 가장 작은 것들을 이렇게 대하신다면, 자기 자녀는 어떻게 대하시겠느냐.”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지 기억할 때 믿음이 일어나요.
모자란 것을 세어 보기를 그치고 풍성하심을 바라볼 때 믿음이 일어나요.

믿음은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게 아니에요.
그저 다르게 보기 시작하면 돼요.

믿음은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후하신 하나님을 알아볼 때 자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