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대개 죄 사함을 먼저 떠올려요. 빚이 청산되었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지요. 그게 우리 믿음의 토대니까요.

그런데 십자가의 일은 그보다 더 온전했어요. 예수님은 우리의 죄만 지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질병과 아픔까지 함께 지셨어요. 육체의 치유는 대속에 포함되어 있어요.

마태복음은 이 연결을 분명하게 밝혀요.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병든 사람들을 고치셨을 때, 마태는 그것이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진 일이라고 설명했어요.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러라" 마태복음 8:16-17 (개역한글)

마태가 인용한 본문은 이사야 53장이에요.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4-5 (개역한글)

이사야 53장 4절에서 개역한글이 "질고"로 옮긴 말은 히브리어 (홀리) חֳלִי — "병, 질병"이고, "슬픔"으로 옮긴 말은 히브리어 (마크오브) מַכְאוֹב — "아픔, 고통"이에요. 예수님은 우리의 질병과 통증을 실제로, 몸으로 십자가에서 지셨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치유는 나중에 덧붙여진 보너스가 아니에요. 값이 이미 치러진, 모든 신자의 권리예요. 질병은 저주에 속한 것이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어요.

많은 신자가 확신 없이 치유를 구해요. "주님, 주님의 뜻이라면 저를 고쳐 주세요" 하고요. 하지만 내 죄를 용서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우리는 고민하지 않아요. 이미 값을 치르셨으니까요. 같은 이치로, 내 몸을 고치시는 것이 그분의 뜻인지 아닌지도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값은 이미 지불되었어요.

치유가 왜 더뎌 보이는지, 왜 우리가 잃음을 겪는지 늘 이해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우리의 경험이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바꾸지는 못해요. 우리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일에 시선을 고정해야 해요. 예수님이 이미 지셨기 때문에, 질병은 당신의 몸에 머물 법적 근거가 없어요.

대속은 법적인 거래예요. 예수님이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 τετέλεσται —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셨을 때, 그것은 빚이 전액 청산되었다는 선언이었어요. 공의가 만족되었어요. 하나님은 같은 빚에 대해 두 번 갚으라고 요구하지 않으세요. 예수님이 이미 죄의 형벌을 치르시고 질병을 포함한 저주의 결과까지 짊어지셨기 때문에, 원수가 그 결과를 당신에게 집행하는 것은 불법이에요.

치유를 요구할 때 당신은 하나님께 새로운 일을 해 달라고 조르는 게 아니에요. 십자가의 영수증을 내미는 거예요. 당신의 몸과 원수를 향해 값이 이미 치러졌다고 선포하는 거예요. 그래서 기도에 담대함이 생겨요. 이제 하나님이 혹시 자비를 베풀어 주실까 기대하며 서 있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일 위에 세워진 공의 위에 서 있는 거예요.

예수님은 당신의 죄 사함을 사신 그만큼 확실하게, 십자가에서 당신 몸의 치유도 값 주고 사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