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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어: “신실함”

7개의 글을 찾았어요

바벨론 한복판에서 산다는 것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기준을 거부하는 세상 한가운데서 살아가요. 이건 오늘 처음 생긴 일이 아니에요. 이스라엘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에 사로잡혀, 적대적인 문화 질서 아래서 살았어요.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경건하지 않은 문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일러 주셨어요. 산속 동굴로 숨어 들어가라거나, 평범한 삶을 접으라고 하지 않으셨어...

원망했는데 아무도 죽지 않았어요

심판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흔들어 놓는 시기가 성경에 있어요. 애굽과 시내산 사이, 바로 그 구간이에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종살이에서 건져 내셨어요. 그들은 홍해를 건넜어요. 그런데 건너자마자 불평이 시작됐어요. 홍해 앞에서 원망했고, 마라의 쓴 물 앞에서 불평했고, 배가 고파지자 우리를 죽이려고 끌어냈느냐고 하나님을 몰아세웠어요. 원망은 죄...

카리스, 은혜를 다시 정의하는 헬라어

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는 호의”라고 정의해요. 틀린 말은 아니에요. 다만 절반만 말한 셈이죠. 로마에 가서 분수 하나 보고 와서는 로마를 다 봤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신약에서 “은혜”로 옮겨진 헬라어는 (카리스) χάρις예요. 147구절에 걸쳐 156번 나와요. 바울이 이 단어를 썼고, 요한은 복음서 서문을 이 단어 위에 세...

안식은 사치가 아니에요

하나님은 모든 일을 마치시고, 지으신 것을 하나하나 둘러보신 뒤, 뜻밖의 일을 하셨어요. 쉬셨어요. 피곤하셔서가 아니에요. 모든 것이 다 완성되었기 때문이에요. 일곱째 날의 안식, 이 한 번의 쉼이 성경에 나오는 모든 평안과 공급과 보호의 약속을 떠받치는 토대가 되었어요. 그런데도 대부분의 믿는 이들은 여전히 안식을 자기 형편에는 과분한 사치처럼 여기며 살...

헤세드, 끝까지 놓지 않는 사랑

히브리어 성경에는 우리말 한 단어로는 도무지 옮겨지지 않는 말이 하나 있어요. 번역자들은 ‘자비’라고도 했고 ‘인자’라고도 했고, ‘긍휼’, ‘인애’, ‘성실’, ‘선대’라고도 옮겼어요. 어느 것이나 한 조각씩은 담아내요. 그런데 전부를 담아내는 말은 없어요. 그 단어가 (헤세드) חֶסֶד예요. 구약에 251번 나와요. 시편을 온통 적시고 있어요. 룻의...

당신의 유일한 싸움은 쉼에 머무는 것

이스라엘이 르비딤 — “쉬는 자리들”이라는 뜻의 땅에 들어섰을 때, 아말렉이 와서 싸움을 걸었어요 (출애굽기 17:8). 아말렉이라는 이름은 (아말) עמל 이라는 뿌리에서 나왔어요. 수고, 고달픔, 뼈아픈 노동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 그 싸움은 단지 적군과의 싸움이 아니었어요.내 힘으로 다시 애써 보라고 끌어당기는 힘과의 싸움이었어요. 모세는 산 위에 서...

영광이 당신의 이야기를 설명할 때

세상은 당신을 오해할 수 있어도, 하늘은 오해하지 않아요.당신의 신실함은 영원히 묻혀 있지 않아요. 바울은 이렇게 써요.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로새서 3:4 (개역한글) 나타나다 — (파네로테테) φανερωθῆτε — “드러나다, 덮개가 벗겨지다” 하나님이 은밀한 곳에서 빚으신 것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