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뜻은? 건짐받은 뒤에 부르는 노래

한 남자가 장례식장 뒷자리에 서서 성가대가 부르는 “할렐루야”를 들어요. 두 주 뒤에는 성탄 음악회에서 같은 말을 듣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랑 노래에서 또 들어요. 할렐루야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라는 뜻이에요. 히브리어 할렐루-야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말이에요. 여러 사람을 불러 모아, 하나님의 이름을 짧게 줄인 ‘야’를 함께 찬양하자고 외치는 말이에요.

여기까지가 사전이 주는 답이에요. 성경은 훨씬 넉넉한 답을 들려줘요.

이 말은 히브리어 시편에 스무 번 남짓 나오고, 그리스어 신약에는 네 번 나와요. 신약의 네 번은 모두 요한계시록 한 장에 모여 있어요. 성경의 마지막 다섯 편 시편은 이 말로 시작해서 이 말로 끝나요. 유월절 식탁에서도 이 노래를 불렀어요. 그리고 요한계시록 19장에서는 하늘의 무리가 이 말을 잇달아 네 번 외쳐요.

그 거의 모든 자리에서 할렐루야에는 이유가 붙어 있어요. 시편은 찬양하라고 말하기 전이든 뒤든, 왜 찬양해야 하는지를 꼭 밝혀요. 이 무늬가 할렐루야라는 말 전체를 여는 열쇠예요. 할렐루야는 하나님이 일하신 뒤에 사람들이 하는 말이에요. 건져 주신 일에 대한 응답이에요. 건짐받으려고 치르는 값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이 글에서는 할렐루야에 담긴 히브리어를 살피고, 이 말이 성경 어디에 나오는지 짚어 본 다음, 이 말이 평범한 한 주를 어떻게 바꾸는지 차례로 살펴볼게요.

히브리어로 본 할렐루야의 뜻

할렐루야는 히브리어로 (할렐루-야) הַלְלוּ־יָהּ — “야를 찬양하라, 여호와를 찬양하라”라고 써요. 어떤 히브리어 본문은 הַלְלוּיָהּ처럼 한 낱말로 붙여 쓰고, 어떤 본문은 ‘마켑’이라는 짧은 이음표로 두 부분을 이어요. 어느 쪽이든 두 낱말을 꾹 눌러 하나로 붙인 말이에요.

앞부분은 (할렐루) הַלְלוּ — “너희 모두 찬양하라”예요. 명령형이고, 여러 사람에게 하는 말이에요. 시인은 혼잣말을 하고 있지 않아요. 방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에게, 때로는 온 민족에게 말을 걸어요. 시편 150편에서는 “호흡이 있는 자마다” 불러내요.

뒷부분은 (야) יָהּ — “여호와”예요. 하나님의 언약 이름을 줄인 꼴이에요.

그러니 가장 담백하게 옮기면 “여호와를 찬양하라!”이고, 여러 사람을 부르는 느낌을 살리면 “너희 모두 여호와를 찬양하라!”예요. 스트롱 성구 사전은 이 히브리어 구절에 번호를 따로 매기지 않아요. H1984 (할랄)과 H3050 (야), 두 항목이 합쳐진 말로 다뤄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그리스어 꼴에는 G239라는 번호가 따로 있어요.

뿌리말 할랄

할렐루야 밑에 있는 동사는 (할랄) הָלַל — “찬양하다, 자랑하다, 빛나다”예요. 스트롱 번호는 H1984이고, 구약에 165번쯤 나와요.

히브리어 사전들은 할랄의 뜻을 폭넓게 풀어요. 어떤 꼴에서는 “빛나다”, “빛을 내다”라는 뜻이에요. 가장 흔한 꼴에서는 “찬양하다”라는 뜻이에요. 또 다른 꼴에서는 “자랑하다”, “영광으로 여기다”라는 뜻이에요. 드물게 쓰이는 꼴 하나에서는 “미친 사람처럼 굴다”라는 뜻이 되기도 해요.

이 마지막 뜻은 잘 알려진 장면에 나와요. 다윗은 사울을 피해 블레셋 성읍 가드로 달아났어요. 그곳 왕이 자기를 알아볼까 봐 두려웠던 다윗은 미친 사람 흉내를 냈어요.

“그들의 앞에서 그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 하여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사무엘상 21:13 (개역한글)

“미친 체”가 바로 할랄이에요.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이 구절이 21장 14절이에요.) 다윗은 나중에 바로 그 탈출을 돌아보며 시편 34편을 썼어요. 그리고 2절에서 할랄을 다시 썼는데, 이번에는 ‘자랑하다’라는 뜻이에요.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시편 34:2 (개역한글)

목숨을 건지려고 바보 흉내까지 냈던 사람이, 이제는 그 목숨을 정말로 건져 주신 하나님을 자랑해요. 한 뿌리말이 두 장면을 다 품고 있어요.

이 ‘자랑’이라는 뜻을 알면 할렐루야가 더 잘 보여요. 히브리어에서 누군가를 찬양한다는 건 그 사람을 자랑한다는 뜻이에요. 그가 한 일을 남들이 들을 수 있는 자리에서 소리 내어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도 예레미야서에서 같은 동사를 쓰세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레미야 9:23-24 (개역한글)

이 말씀에 나오는 ‘자랑’은 모두 할랄이에요.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한 일을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자랑하라고 말씀하세요. 그 목록의 맨 앞에 놓인 것이 ‘인애’예요. 바로 히브리어 헤세드, 곧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이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듣고 싶어 하시는 자랑은 그분의 인자하심에 대한 자랑이에요.

할렐루야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래요. 하나님을 자랑하세요. 함께, 소리 내어.

하나님 이름의 짧은 꼴 야

할렐루야의 뒷부분은 (야) יָהּ — “여호와”예요. 스트롱 번호는 H3050이에요.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 곧 네 글자로 된 그 이름을 짧고 시적으로 줄인 꼴이에요. 개역한글은 그 네 글자 이름을 “여호와”로 옮겼어요. ‘야’는 구약에 48번쯤 나오고, 대부분 노래와 시편 속에 있어요.

‘야’가 노래 속에 처음 나오는 곳은 홍해 바닷가예요. 이스라엘은 마른 땅을 밟고 바다를 건넜고, 바로의 군대가 물에 잠기는 것을 막 지켜본 참이었어요.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출애굽기 15:2 (개역한글)

이 구절의 첫 “여호와”가 바로 ‘야’예요. 무엇이 먼저였는지 짚어 볼 만해요. 이스라엘은 노래를 불러서 바다를 건너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바다를 가르셨고, 그들이 건넜고, 그다음에 노래했어요. ‘야’라는 이름은 방금 그들을 건져 내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예배에 들어왔어요.

할렐루야는 성경 어디에 나올까

시편에서

흔히 쓰는 셈법으로는 히브리어 할렐루야가 구약에 24번 나오고, 모두 시편 안에 있어요. 학자마다 숫자가 조금씩 다른데, 몇몇 구절이 ‘야’ 대신 하나님의 온전한 이름을 넣은 비슷한 구절을 쓰기 때문이에요.

처음 나오는 곳은 시편 104편의 마지막 줄이에요.

“죄인들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들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시리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시편 104:35 (개역한글)

그 뒤로 할렐루야는 시편의 마지막 3분의 1에 몰려 나와요. 105, 106, 111, 112, 113, 115, 116, 117, 135편 등을 열거나 닫아요. 마지막 다섯 편, 146편부터 150편까지는 하나같이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요. 시편이라는 책 전체가 할렐루야로 막을 내려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편 150:6 (개역한글)

시편 150편은 고작 여섯 절인데, 그 안에 동사 할랄이 열세 번이나 나와요. 시편은 입이 닳도록 되풀이하는 찬양으로 끝나요.

이 책의 히브리어 이름도 같은 쪽을 가리켜요. 유대인들은 시편을 (테힐림) תְּהִלִּים — “찬양들”이라고 불러요. 할랄에서 나온 명사 (테힐라) תְּהִלָּה — “찬양”의 복수형이에요. 이스라엘의 기도와 탄식과 하소연을 모은 책인데, 그 이름은 찬양에서 따왔어요.

개역한글에서 할렐루야 찾기

개역한글은 시편 여러 곳에서 이 말을 번역하지 않고 “할렐루야”라고 소리 그대로 적었어요. 시편 104편의 마지막 줄, 150편의 첫머리와 끝이 그래요. 다만 몇몇 곳에서는 같은 히브리어를 “여호와를 찬양하라”로 풀어 옮겼어요(시편 135:3이 그런 예예요). 그러니 시편 후반부에서 “할렐루야”나 “여호와를 찬양하라”라는 외침이 따로 떨어져 나오면, 그 밑에는 할렐루야가 있을 때가 많아요.

신약에서

신약은 이 말을 딱 네 번 쓰는데, 모두 요한계시록 19장(1, 3, 4, 6절)이에요. 그리스어로는 (알렐루이아) ἀλληλουϊά — “여호와를 찬양하라”이고, 스트롱 번호는 G239예요. 사실 그리스어 낱말이 아니에요. 히브리어 구절을 그리스 글자로 소리 나는 대로 옮겨 적은 거예요. 우리가 “할렐루야”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말하는 것과 같아요.

할렐루야와 알렐루야는 같은 말일까

성당에서 부르는 “알렐루야”와 교회에서 부르는 “할렐루야”가 서로 다른 말이냐고 묻는 분이 많아요. 같은 말이에요.

히브리어는 이 말을 숨을 내쉬는 ‘ㅎ’ 소리로 시작해요. 그리스어는 이 소리를 온전한 글자로 적지 않고, 첫 글자 위에 작은 부호를 찍어 나타냈어요. 라틴어에서는 이 소리가 아예 떨어져 나갔어요. 그래서 그리스어 알렐루이아는 라틴어에서 ‘알렐루야’가 되었고, 그 꼴이 라틴어 성경과 라틴어 찬송을 거쳐 교회의 말로 자리 잡았어요.

개역한글은 시편에서도 요한계시록에서도 히브리어 소리를 살린 “할렐루야”를 써요. 가톨릭 전례는 라틴어를 따라 “알렐루야”라고 해요. 어느 쪽이든 뜻은 “여호와를 찬양하라”예요.

할렐 시편과 유월절 식탁

시편 113편부터 118편까지는 유대 전통에서 ‘할렐’이라고 부르는 한 묶음이에요. 이 이름도 같은 뿌리말 할랄에서 나왔어요. 시편 114편이 애굽에서 나온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기 때문에 ‘애굽 할렐’이라고도 불러요.

할렐은 유월절 식사 때 불렀어요. 초기 유대 율법서인 미쉬나에 따르면, 식사 전에 시편 113편과 114편을 부르고 식사 뒤에 115편부터 118편까지 부르는 것이 관례였어요.

이 순서가 중요해요. 유월절은 어린 양이 죽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심판이 그 집을 넘어간 밤을 기억하는 절기예요. 이스라엘은 그 밤을 얻어 내려고 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집 안에 머물며 어린 양을 먹었고, 이튿날 아침 자유인이 되어 걸어 나왔어요. 할렐은 하나님 품에 안겨 애굽을 나온 사람들의 노래였어요.

시편 113편은 “할렐루야”로 문을 열고, 곧 그 이유를 말해요.

“가난한 자를 티끌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잿더미에서 들어 올리사 그로 방백들 곧 그 백성의 방백들과 함께 앉게 하시는도다” 시편 113:7-8 (NKJV 사역)

이 시편 속 가난한 사람은 잿더미에서 스스로 기어 나오지 않아요. 하나님이 그를 들어 올려 방백들 곁에 앉히세요. 그것이 할렐루야의 이유예요.

할렐은 시편 118편으로 끝나요. 그 시편은 이렇게 시작해요.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18:1 (개역한글)

그리고 같은 시편 뒷부분에는 이런 말씀이 있어요.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시편 118:22-24 (개역한글)

예수님은 마태복음 21장 42절에서 이 버린 돌을 자신에게 적용하셨어요. 그리고 마태는 유월절 식사였던 최후의 만찬 그 밤을 이렇게 기록해요.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마태복음 26:30 (개역한글)

마태는 그 찬미가 무엇이었는지 밝히지 않아요. 많은 주석가는 그것이 할렐의 뒷부분이었을 거라고 봐요. 유월절 식사를 마무리하던 노래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건축자들이 자신을 버리기 몇 시간 전에 “건축자의 버린 돌”을 노래하셨어요. 여호와께서 그 일을 행하실 곳으로 걸어가시며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를 노래하셨어요. 이것은 성경에 분명히 적힌 사실이 아니라 오래된 전통이에요. 그래도 유월절이라는 자리와 꼭 맞아요.

어느 쪽이든 할렐의 무늬는 분명해요. 어린 양이 먼저 오고, 할렐루야는 그 뒤에 와요.

요한계시록 19장의 할렐루야

성경의 마지막 할렐루야는 역사의 끝자락에서 울려요. 요한계시록 19장은 하늘의 허다한 무리를 이렇게 기록해요.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요한계시록 19:1 (개역한글)

이 장은 그 말을 세 번 더 되풀이해요. 두 번째 할렐루야는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한 성을 하나님이 심판하신 뒤에 나와요(3절). 세 번째는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아멘 할렐루야” 하고 외치는 소리예요(4절). 네 번째가 가장 우렁차요.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므로” 요한계시록 19:6-7 (개역한글)

요한계시록 19장의 할렐루야에는 저마다 이유가 붙어 있어요. 구원은 하나님께 있어요. 그 무리 가운데 누구도 그 구원에 자기 몫이 있다고 나서지 않아요. 7절의 신부는 예비되어 있는데, 바로 다음 절이 그 혼인 예복이 어디서 왔는지 알려 줘요.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19:8 (개역한글)

“허락하사”라는 말처럼, 신부는 그 세마포를 받았어요. 하늘의 할렐루야는 건짐받은 무리가 누가 자기들을 건졌는지 그대로 말하는 소리예요.

유월절 식탁의 그 어린 양이 요한계시록 예배의 한가운데 서 계세요. 성경의 할렐루야는 애굽의 어린 양에서 시작해서 보좌 위의 어린 양으로 끝나요.

할렐루야와 찬양을 뜻하는 다른 히브리어

히브리어에는 우리말 성경이 “찬양”, “찬송”, “감사”, “송축”으로 옮긴 낱말이 여럿 있어요. 그 차이를 알면 시편을 더 정확하게 읽을 수 있어요. 대표적인 낱말들을 살펴볼게요.

할랄: 드러내 놓고 자랑하는 찬양

(할랄) הָלַל — “찬양하다, 자랑하다”, H1984. 앞에서 본 것처럼, 하나님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찬양이에요. 크고, 드러나 있어요. 할렐루야는 할랄이 쓰인 가장 유명한 말이에요.

야다: 손을 뻗는 찬양

(야다) יָדָה — “던지다, 감사하다, 찬양하다”, 스트롱 번호 H3034, 114번쯤 나와요. 기본 뜻은 손을 뻗는 거예요. 가장 흔한 꼴에서는 ‘감사하다’, ‘인정하다’라는 뜻이에요.

이 말이 찬양의 뜻으로 처음 쓰인 곳은 레아 이야기예요. 레아는 야곱이 원하지 않았던 아내였어요. 첫 세 아들을 낳을 때마다 레아는 비슷한 말을 했어요. 이제는 남편이 나를 사랑하겠지. 그런데 넷째 아들을 낳았을 때는 다른 말을 했어요.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생산이 멈추었더라” 창세기 29:35 (개역한글)

여기서 “찬송하리로다”가 야다이고, 유다라는 이름이 이 말에서 나왔어요. 레아는 남편의 반응으로 자기 삶을 재던 일을 그만두고, 이미 받은 것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하기 시작했어요. 유다의 계보에서 다윗이 나왔고, 다윗의 계보에서 예수님이 나셨어요.

토다: 감사의 제물

(토다) תּוֹדָה — “감사, 감사 제물”, 스트롱 번호 H8426, 야다에서 나온 말이에요. 입으로 드리는 감사를 뜻하기도 하고, 고마움을 표하려고 실제로 가져오는 제물을 뜻하기도 해요. 시편 69편 30절은 할랄과 토다를 나란히 놓아요.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시편 69:30 (개역한글)

“찬송하며”가 할랄이고, “감사함으로”가 토다예요.

바라크: 송축하다, 무릎 꿇다

(바라크) בָּרַךְ — “복을 주다, 송축하다, 무릎 꿇다”, 스트롱 번호 H1288, 330번쯤 나와요. 하나님이 사람에게 복을 주실 때 쓰는 동사가 바라크예요. 사람이 “여호와를 송축”할 때도 같은 바라크를 써요. 개역한글은 앞의 것을 “복을 주다”로, 뒤의 것을 “송축하다”로 달리 옮겼지만, 원문은 한 낱말이에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편 103:1-2 (개역한글)

시편 104편 35절은 한 줄에 두 말을 다 써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앞의 “송축하라”가 바라크이고, 뒤가 할렐루야예요.

테힐라: 찬양의 노래

(테힐라) תְּהִלָּה — “찬양, 찬양의 노래”, 스트롱 번호 H8416, 할랄에서 나온 명사예요. 찬양에 관한 말씀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구절에 이 말이 들어 있어요.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시편 22:3 (개역한글)

여기서 “찬송”이 테힐라예요. 이 구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용하신 바로 그 시편 22편 안에 있어요.

서로 어떻게 어울릴까

바라크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요. 야다는 그분께 손을 뻗어요. 토다는 그분께 감사 제물을 들고 가요. 할랄은 몸을 돌려 다른 모든 사람에게 그분을 이야기해요. 할렐루야는 할랄의 말, 곧 다른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말이에요.

할렐루야가 아닌 것

할렐루야는 값이 아니에요. 시편 어디에서도 찬양으로 하나님의 호의를 사지 않아요. 이유는 언제나 반대 방향으로 흘러요. 그분이 선하시니까,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니까, 가난한 자를 일으키셨으니까 찬양하라는 거예요.

“여호와를 찬양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 이름을 찬양하라” 시편 135:3 (개역한글)

이 구절의 신학 전체가 작은 낱말 하나에 실려 있어요. 히브리어 원문에서 “여호와는 선하시며” 앞에는 (키) כִּי — “왜냐하면”이 있어요. 개역한글은 이 말을 따로 옮기지 않고 “선하시며”라는 이음말 속에 녹였지만, 원문은 이유를 분명히 밝혀요. 찬양은 하나님이 이미 하신 일에 대한 대답이에요. 그분이 다음에 하실지도 모르는 일을 미리 사 두는 게 아니에요.

할렐루야는 하나님께 필요해서 드리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불안해하는 분이 아니에요. 박수를 받아야 하나님다워지는 분도 아니에요. 찬양은 찬양하는 사람에게 유익해요. 시선을 내 문제에서 떼어, 그 문제보다 크신 분께로 옮겨 주니까요. 바울은 구원의 계획 전체가 이렇게 짜여 있다고 말해요.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에베소서 1:6 (개역한글)

은혜를 거저 받은 것이 먼저예요.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은 그다음이에요.

할렐루야는 좋은 날에만 하는 말이 아니에요. 이 말을 좋은 소식에 대한 반응쯤으로, 검사 결과가 깨끗하게 나왔을 때 외치는 말쯤으로 여기기 쉬워요. 하지만 할렐루야 시편을 쓴 사람들은 순탄한 삶을 살지 않았어요. 할렐의 마지막 노래인 시편 118편은 사방에서 원수에게 에워싸인 모습을 그려요. 여호사밧 왕은 세 나라 군대를 한꺼번에 맞닥뜨렸을 때, 노래하는 사람들을 군대 맨 앞에 세웠어요.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역대하 20:21 (개역한글)

그들은 아직 아무것도 이기지 못했어요. 그러면 무엇을 노래했을까요? 변함없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었어요. 그날이 어떻게 끝날지 알기도 전에, 그들의 찬양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기대고 있었어요.

할렐루야는 공식이 아니에요. 찬양을 하나의 기술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요. 충분히 오래, 충분히 크게 부르면 돌파가 온다는 식이에요. 시인들은 하나님을 하나님 그분 때문에 찬양했어요. 찬양이 무언가를 얻어 내는 도구가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찬양이 아니에요.

할렐루야가 일상에서 바꾸는 것

옛 언약 아래에서 예배자는 감사 제물, 곧 토다로 짐승을 가져왔어요. 새 언약 아래에서는 제물이 이미 드려졌어요.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예수님을 통해 드리는 찬양이에요.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브리서 13:15 (개역한글)

여기서 중요한 말은 “예수로 말미암아”예요. 내 어린 양을 끌고 갈 필요가 없어요. 입술을 들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나아가면 돼요. 평범한 한 주 속에서 그건 이런 모습이에요.

1. 말만 하지 말고 이유를 대세요. 시편은 “여호와를 찬양하라”고만 하고 끝내는 법이 거의 없어요. 왜 찬양하는지를 꼭 말해요. 찬양할 때 하나님이 하신 일을 구체적으로 짚어 보세요. 용서받았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결과가 어떻든 면접 볼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하는 식으로요. 구체적인 이유가 찬양을 정직하게 지켜 줘요.

2. 소리 내어 말하세요. 할랄은 입으로 하는 말이에요. 나도 듣고 남도 들으라고 있는 말이에요. 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보다, 차 안에서, 식탁에서, 친구 앞에서 입 밖으로 꺼내는 쪽이 이 말의 본뜻에 더 가까워요.

3. 십자가에서 시작하세요. 오늘은 찬양할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 없다면, 성경의 할렐루야에 담긴 가장 오래된 이유로 돌아가세요. 어린 양이 죽었고, 나는 풀려났어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개역한글)

이 사실은 내 한 주가 어떻게 흘러가든 달라지지 않아요. 한 해 중 가장 힘든 날에도 할렐루야라고 말할 이유가 돼요.

4. 결과보다 먼저 찬양하세요. 여호사밧의 노래하는 사람들은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찬양했어요. 우리도 응답을 보기 전에 하나님의 성품을 두고 감사할 수 있어요. 문제가 사라진 척하자는 게 아니에요. 문제가 그대로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에 대해 여전히 참인 것을 입으로 고백하는 거예요.

5. 잠시 멈추고 진리가 마음에 내려앉게 하세요. 시편에는 또 다른 낱말이 있어요. 셀라인데, 많은 사람이 잠시 멈추라는 신호로 읽어요. 찬양한 뒤에 잠깐 멈추세요. 우리는 관객 앞에서 공연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이미 우리를 받아 주신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있는 거예요.

책 끝에 놓인 말

시편은 할렐루야로 끝나요. 성경에서 이 말이 마지막으로 쓰이는 곳은 어린 양의 혼인 자리예요. 두 곳 모두에서 할렐루야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품에 안겨 온 사람들이 남기는 마지막 말이에요.

우리는 그 무리 속에 자리를 얻으려고 할렐루야를 외치지 않아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자리를 얻어 주셨어요. 우리는 이미 그 무리 안에 있기 때문에 할렐루야를 외쳐요.

할렐루야는 하나님께 건짐받은 사람이 자기를 건지신 그분을 자랑하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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