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뜻은? 하나님 말씀에 기대는 한마디

그리스도인이라면 일주일에도 몇 번씩 아멘이라고 말해요. 기도를 마칠 때, 찬양이 끝났을 때, 설교자가 참으로 옳은 말을 할 때 우리는 아멘이라고 해요. 아멘은 “참으로 그렇다”, “그렇게 되기를”이라는 뜻이에요. 견고하다, 신실하다, 믿을 만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뿌리에서 나온 말이에요. 그래서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은 방금 들은 말이 내 무게를 넉넉히 지탱해 준다고 동의하는 일이에요.

그런데 이 말이 어디서 왔는지 멈춰서 물어보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아멘은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말 가운데 하나인데, 대부분의 언어가 이 말을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영어권, 일본, 한국, 인도네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삼천여 년 전 이스라엘이 에발산에서 외쳤던 바로 그 히브리어를 지금도 입에 올리고 있어요.

아멘은 예의 바르게 말을 맺는 인사말이 아니에요. 그 안에 훨씬 많은 것이 담겨 있어요. 예수님은 이 말을 그 어떤 랍비도 쓰지 않던 방식으로 쓰셨어요. 바울은 이 말을 하나님이 하신 모든 약속과 엮었어요.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 책은 이 말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불러요.

이 글에서는 아멘을 히브리어 뿌리에서 시작해 구약과 예수님의 말씀을 거쳐, 우리가 왜 지금도 기도 끝에 아멘이라고 하는지까지 따라가 보려고 해요.

히브리어로 본 아멘의 뜻

히브리어 단어는 (아멘) אָמֵן — “확실히, 진실로, 그렇게 되기를”이에요. 스트롱 번호로는 H543이고, 뒤 음절에 힘을 주어 “아-멘” 하고 읽어요.

스트롱 사전은 이 말에 세 가지 뜻을 달아 두었어요.

  1. 확실함: 단단해서 무너지지 않는 것.
  2. 신실함: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나 말의 성품.
  3. “진실로”라는 뜻의 부사: 방금 한 말을 확증하는 말.

아멘은 히브리어 구약에 서른 번 나와요. 개역한글도 대부분 번역하지 않고 “아멘”이라고 그대로 적었어요. 다만 이사야 65:16 한 구절에서는 이 말을 “진리”로 두 번 옮겼어요.

거의 모든 경우에 아멘은 응답이에요. 누군가 먼저 말해요. 그러면 한 사람이, 때로는 온 무리가 “아멘” 하고 대답해요. 아멘은 언제나 두 번째로 오는 말이에요. 다른 사람이 한 말을 확증하는 말이에요.

이것이 히브리어 아멘의 꾸밈없는 뜻이에요. 방금 하신 말씀은 견고합니다. 저는 그 위에 서겠습니다.

뿌리: 아만, 믿음, 진리

아멘은 동사 (아만) אָמַן — “받치다, 견고하다, 신실하다”에서 나왔어요. 스트롱 번호 H539이고, 구약에 108번 나와요. 가장 기본적인 뜻은 무언가를 떠받치고 붙들어 주는 거예요. 아이를 품에 안고 다니는 부모나 유모를 묘사할 때도 이 동사를 써요. 민수기 11:12에서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이라고 할 때가 그래요.

떠받친다는 그림에서 시작한 이 말은 견고함으로, 다시 신실함으로, 그리고 신뢰로 뜻이 자라 가요. 기댈 수 있는 것이 곧 믿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성경의 중요한 단어 여럿이 바로 이 한 뿌리에서 나왔어요.

에무나: 흔들리지 않게 붙드는 믿음

명사 (에무나) אֱמוּנָה — “견고함, 신실함, 믿음”(스트롱 H530)도 같은 집안의 말이에요. 성경에 처음 나올 때 이 말은 눈에 보이는 장면을 그려요.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가 손을 들고 있으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졌어요. 모세는 지쳤어요. 그래서 아론과 훌이 그를 돌 위에 앉히고 그의 팔을 붙들어 올렸어요.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취하여 모세의 아래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출애굽기 17:12 (개역한글)

개역한글이 “내려오지 아니한지라”로 옮긴 부분, 곧 손이 흔들림 없이 든든하게 버텼다는 말이 바로 에무나예요. 에무나는 ‘믿음’이라는 뜻이 되기 전에, 누군가 붙들어 주었기에 떨어지지 않은 팔을 뜻했어요. 성경이 말하는 믿음을 이보다 잘 보여 주는 그림도 드물어요. 믿음은 내가 얼마나 강하게 느끼느냐보다, 무엇이 나를 붙들고 있느냐의 문제예요.

에메트: 기댈 수 있는 진리

(에메트) אֶמֶת — “진리, 견고함, 신실함”(스트롱 H571)도 같은 뿌리에서 줄어든 형태예요. 하나님이 자신을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출애굽기 34:6)이라고 소개하실 때 인자, 곧 헤세드와 짝을 이루는 말이 이 에메트예요. 이 짝에 대해서는 헤세드는 무슨 뜻일까에서 따라가 본 적이 있어요. 히브리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진리란 그 위에 집을 지을 수 있을 만큼 견고한 것이에요.

아브라함이 믿으니: 믿음 뒤에 있는 동사

성경이 처음으로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말할 때, 바로 이 뿌리를 써요.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세기 15:6 (개역한글)

“믿으니”는 (헤에민) הֶאֱמִן — “그가 믿었다, 신뢰했다”로, 아만의 사역형이에요. 글자 그대로 느끼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자기 무게를 기댔다, 하나님을 견고한 분으로 여겼다는 뜻이에요. 아브라함에게는 아직 아들이 없었어요. 그와 사라는 아이를 낳기에는 너무 늙었어요. 하나님이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은 아멘이 나온 바로 그 뿌리의 말로 응답했어요.

바울은 그것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풀어 줘요.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로마서 4:20-21 (개역한글)

아브라함은 자기 몸을 보았고, 그다음 약속을 보았어요. 그리고 약속을 택했어요. 그 선택에 대해서는 몸을 보지 말고 약속을 보라에 더 적어 두었어요.

믿으면 견고히 서리라

이 뿌리의 두 형태가 나란히 놓인 구절이 있어요. 전쟁을 앞두고 여호사밧 왕이 유다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역대하 20:20 (개역한글)

“신뢰하라”는 (하아미누) הַאֲמִינוּ — “믿으라, 신뢰하라”이고, “견고히 서리라”는 (테아메누) תֵאָמֵנוּ — “너희가 견고해지리라”예요. 둘 다 아만에서 나왔어요. 쉽게 풀면 이런 말이에요. 견고하신 하나님께 기대라, 그러면 너희도 견고해지리라. 이사야 7:9의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도 같은 두 낱말을 짝지어 써요.

그러니 아멘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믿음, 신실함, 진리와 한 집안인 말을 쓰고 있는 거예요. 히브리어에서 이 말들은 모두 하나의 생각이에요. 나를 떠받쳐 줄 만큼 견고한 무엇.

구약 속의 아멘

구약은 몇 가지 분명한 자리에서 아멘을 써요. 자리마다 그 뜻에 한 겹씩 더해져요.

첫 번째 아멘: 내게 선포된 말을 받아들이다

성경의 첫 아멘은 민수기 5장에 있어요. 부정을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은 여인이 제사장이 자기에게 선포하는 맹세의 말을 들었어요. 그리고 대답했어요.

“여인은 아멘 아멘 할지니라” 민수기 5:22 (개역한글)

히브리어 원문은 아멘을 두 번 겹쳐 써요. 개역한글도 “아멘 아멘”으로 그대로 옮겼어요. 그 겹친 아멘은 자기에게 선포된 말을 구속력 있는 말로 받아들인다는 뜻이었어요.

에발산의 열두 번 아멘

아멘이 가장 길게 이어지는 곳은 신명기 27장이에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레위인들이 에발산에서 열두 가지 저주를 낭독했어요. 하나가 끝날 때마다 온 백성이 대답했어요.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백성은 다 아멘 할지니라” 신명기 27:26 (개역한글)

율법 아래에서 이스라엘은 저주에 아멘이라고 했어요. 율법을 어기는 사람은 누구든 율법이 말한 대로 받아 마땅하다고 동의한 거예요.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고, 곧이어 그 답을 내놓아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3:13 (개역한글)

에발산에서 이스라엘의 아멘은 저주에 동의했어요. 예수님은 그 저주를 자기 몸에 지셨어요. 그래서 새 언약 아래에서 믿는 사람의 아멘은 저주가 아니라 복에 대한 동의가 되었어요.

하나님께 확증을 구하는 아멘

다윗 왕이 솔로몬을 다음 왕으로 세웠을 때, 그의 신하 브나야가 이렇게 대답했어요.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왕께 대답하여 가로되 아멘 내 주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원하오며” 열왕기상 1:36 (개역한글)

브나야의 아멘에는 두 가지가 담겨 있었어요. 그는 왕의 말에 동의했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왕의 말을 뒷받침해 주시기를 구했어요. 사람의 아멘은 그 말 뒤에 서 계신 하나님만큼만 견고해요.

예배 속의 아멘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왔을 때, 노래는 하나님을 송축하는 말로 끝났고 무리가 화답했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하매 모든 백성이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 역대상 16:36 (개역한글)

포로기 이후, 에스라가 백성 앞에서 율법책을 펼쳤을 때도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느헤미야 8:6 (개역한글)

시편은 다섯 권으로 나뉘는데, 그중 네 권이 아멘으로 끝나요(시편 41:13, 72:19, 89:52, 106:48). 그 가운데 마지막 맺음말은 모든 사람에게 함께하자고 불러요.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지어다 할렐루야” 시편 106:48 (개역한글)

아멘은 한 번도 인도자만의 말이었던 적이 없어요. 아멘은 백성의 말이었어요. 인도자가 하나님을 송축하면, 백성이 소리 내어 동의했어요.

아멘의 하나님

이사야서의 한 구절은 아멘을 하나님 자신을 묘사하는 말로 써요.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사야 65:16 (개역한글)

개역한글이 “진리의 하나님”으로 옮긴 말은 히브리어로 (엘로헤 아멘) אֱלֹהֵי אָמֵן — “아멘의 하나님”이에요. 말씀이 견고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이에요. 이 표현을 기억해 두세요. 신약이 이 말을 다시 꺼내 들어요.

헬라어와 신약 속의 아멘

신약 기자들은 헬라어로 글을 쓰면서도 아멘을 번역하지 않았어요. 히브리어 소리를 그대로 살려 헬라 문자로 적었어요. (아멘) ἀμήν — “진실로, 그렇게 되기를”, 스트롱 번호 G281이에요.

이 말은 헬라어 신약에 백 번을 훌쩍 넘게 나와요. 정확한 횟수는 어떤 헬라어 사본 전통을 따르느냐에 따라 달라서, 사전마다 조금씩 다른 수를 제시해요. 개역한글은 예수님이 말씀 앞에 두신 아멘은 대개 “진실로”로, 나머지는 대부분 “아멘”으로 옮겼어요. 그래서 우리 성경에서 “진실로”를 보면 그 자리에 아멘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구약을 헬라어로 옮긴 옛 번역인 칠십인역은 히브리어 아멘을 흔히 (게노이토) γένοιτο — “그렇게 되기를, 이루어지기를”로 옮겼어요. 천사가 메시아를 잉태하리라고 알렸을 때 마리아가 쓴 말이 바로 이 말이에요.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누가복음 1:38 (개역한글)

마리아가 아멘이라는 낱말을 입에 올린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루어지이다”(게노이토)는 아멘을 대신해 자주 쓰이던 헬라어예요. 마리아의 대답은 아멘이 한 사람의 삶에서 어떻게 들리는지 보여 줘요. 마리아는 하나님이 어떻게 그 일을 하실지 알지 못했어요. 다만 그분이 하시리라는 데 동의했어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예수님이 쓰신 아멘

예수님은 이전 유대 전통에서 뚜렷한 선례를 찾기 어려운 방식으로 아멘을 쓰셨어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남의 말에 대한 응답으로 끝에 아멘을 붙였어요. 예수님은 자기 말씀 앞에, 처음에 아멘을 두셨어요.

개역한글은 이것을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로 옮겼어요.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마태복음 8:10 (개역한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3:43 (개역한글)

십자가 위의 강도는 드릴 것도 없었고, 삶을 고칠 시간도 없었어요. 예수님은 그에게 주신 약속 앞에 아멘을 두셨어요. 그는 그 말씀을 발밑에 깔고 죽음을 맞을 수 있었어요.

“진실로 진실로”: 요한복음의 겹친 아멘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이 말을 겹쳐 쓰세요. “아멘 아멘, 너희에게 이르노니.” 요한은 이 표현을 스물다섯 번 기록했고, 다른 복음서에는 이 겹친 형태가 나오지 않아요. 개역한글은 이것을 “진실로 진실로”로 옮겼어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24 (개역한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한복음 6:47 (개역한글)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요한복음 8:58 (개역한글)

믿는 사람이 아멘이라고 할 때, 그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확증해요. 예수님이 먼저 아멘이라고 하셨을 때, 그분은 말씀하시기도 전에 자기 말씀을 확증하셨어요. 그분께는 두 번째 증인이 필요 없었어요. 그분은 말씀이 이미 견고한 분으로서 말씀하셨어요.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비슷한 일을 하셨다고 말해요.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히브리서 6:17 (개역한글)

하나님은 맹세하실 필요가 없으셨어요. 우리가 딛고 설 것을 하나 더 주시려고 맹세하셨어요. 예수님의 “진실로”도 같은 일을 해요. 믿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덤으로 얹어 주신 확신이에요.

예와 아멘: 고린도후서 1:20

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진 아멘 구절은 뜻밖에도 여행 계획이 바뀐 데서 나왔어요.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찾아가겠다고 말했어요. 그러고는 계획을 바꾸었어요. 교회 안의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바울을 믿을 수 없다는 증거라고 했어요. 여행 약속 하나 못 지키는 사람이 전하는 복음을 어떻게 믿겠느냐는 거였어요.

바울은 자기가 전한 말이 오늘은 “예”였다가 내일은 “아니라”가 되는 말이 아니라고 대답했어요. 그 말 뒤에 계신 하나님이 미쁘시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의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고린도후서 1:18-19 (개역한글)

그리고 많은 성도가 외우고 있는 구절을 이어서 썼어요.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린도후서 1:20 (개역한글)

이 구절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고, 순서가 중요해요.

먼저 하나님 쪽이에요.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돼요. 약속이 “예”인 것은 우리가 그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에요. “그리스도 안에서” 예예요. 예수님이 모든 조건을 다 채우셨기에, 그분 안에 있는 사람에게 모든 약속은 이미 확정되었어요. 약속은 약속한 사람에 대해 무언가를 말해 줘요. 약속은 받는 사람의 성적이 아니라 약속하신 분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어요.

다음은 우리 쪽이에요.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요. 아멘은 “우리가” 해요. 하나님은 “예” 하세요. 우리는 “아멘” 해요. “예”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 이루신 그분의 일이에요. 아멘은 그 일에 대한 우리의 동의예요.

이것이 은혜예요. 우리의 아멘이 하나님의 “아니라”를 “예”로 바꾸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이미 “예” 하셨어요. 우리의 아멘은 “주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신 줄 믿습니다” 하는 고백이에요. 그리고 바울은 그 동의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말해요. 그분이 믿을 만한 분이라는 것을 드러내니까요.

아멘이신 예수님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일곱 교회에 편지를 불러 주세요.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세요.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요한계시록 3:14 (개역한글)

“아멘”이 이름이 되었어요. 이사야는 “아멘의 하나님”을 말했어요. 여기서 예수님은 그 칭호를 자기 것으로 삼으세요. 그리고 곧바로 풀어 주세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 충성됨과 참됨, 바로 아만이라는 뿌리가 품고 있는 두 가지 뜻이에요.

이 말씀이 놓인 자리가 무게를 더해요. 라오디게아는 예수님이 차지도 덥지도 않고 미지근하다고 하신 교회였어요(요한계시록 3:15-16). 목록에 오른 교회 가운데 가장 흔들리던 교회였어요. 그런 교회에게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는 분으로 자신을 소개하셨어요.

믿음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기쁜 소식이에요. 우리의 아멘이 늘 우렁찰 수는 없어요. 어떤 주에는 내가 하는 말을 겨우겨우 믿을 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의 안전은 우리 아멘의 힘에 달려 있지 않아요. 아멘이신 예수님께 달려 있어요.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할 수 없으시리라” 디모데후서 2:13 (개역한글)

모세의 손이 버틴 것은 아론과 훌이 붙들어 주었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믿음이 버티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붙들어 주시기 때문이에요. 그분이 아멘이시기에 우리가 아멘이라고 말해요.

기도 끝에 왜 아멘이라고 할까요?

그리스도인이 기도를 아멘으로 마치는 것은 성경 속 하나님의 백성이 그렇게 했기 때문이고, 또 이 말이 담고 있는 뜻 때문이에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의 본을 가르쳐 주셨어요. 개역한글에서는 괄호 속에 담긴 송영이 아멘으로 끝나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태복음 6:13 (개역한글)

바울은 교회에서 누군가 기도하거나 감사를 드리면 다른 사람들이 “아멘” 하고 화답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어요. 그러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야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므로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고린도전서 14:16 (개역한글)

이 구절은 쓸모 있는 것을 알려 줘요. 아멘은 알고 하는 동의여야 해요. 말을 듣고, 그 말에 동의하기 때문에 아멘이라고 하는 거예요.

성경 자체도 이렇게 끝나요.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요한계시록 22:20-21 (개역한글)

예수님이 약속하세요.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요한은 아멘으로 대답하고, 그 약속을 기도로 바꾸어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좋은 아멘은 모두 이 순서를 따라요.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세요. 우리는 동의하고,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주시기를 구해요.

그러니 기도를 아멘으로 마칠 때, 우리는 한 마디로 두 가지를 말하는 거예요. 내가 기도한 그 일에 대해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동의한다는 것. 그리고 내 말이 얼마나 훌륭했느냐가 아니라 그분이 그 일을 맡아 주실 것을 신뢰한다는 것.

다른 사람의 기도에 아멘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 기도에 함께하는 거예요. 온 무리가 에스라의 송축에 함께했듯, 그 기도가 내 기도가 돼요.

아멘이 아닌 것

너무 자주 하는 말이라, 아멘은 뜻을 잃어버리기 쉬워요. 흔한 오해 몇 가지는 짚고 넘어갈 만해요.

마침표가 아니에요

많은 사람이 무전을 끝낼 때 “이상”이라고 하듯 아멘을 써요. 끝났다는 표시일 뿐, 그 이상은 아닌 거죠. 하지만 아멘은 하나의 진술이에요. “이것은 견고합니다”라는 뜻이에요. 문장 한가운데서도, 예수님처럼 문장 맨 앞에서도, 약속의 말씀을 읽다가 나지막이도 할 수 있어요. 아멘이 하는 일은 동의이고, 기도의 끝은 동의할 수 있는 여러 자리 가운데 하나일 뿐이에요.

마법의 봉인이 아니에요

어떤 성도는 끝에 아멘을 붙이지 않은 기도는 효력이 없을까 봐 걱정해요. 아멘이 무슨 암호라도 되는 것처럼요. 성경은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어요. 우리의 기도가 들리는 것은 마지막에 어떤 말을 붙였느냐가 아니라 예수님 때문이에요.

예레미야가 분명한 예를 보여 줘요. 하나냐라는 거짓 선지자가 포로들이 두 해 안에 바벨론에서 돌아올 거라고 선포했어요. 예레미야도 그 말이 참이기를 바랐어요.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되 아멘 여호와는 그같이 행하사 네가 예언한 말대로 여호와의 집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예레미야 28:6 (개역한글)

그러고 나서 예레미야는 하나냐의 말이 하나님께로서 온 것인지는 시간이 증명해 줄 거라고 경고했어요. 그 말은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 아니었어요. 예레미야의 아멘은 소원을 담고 있었지만, 거짓 말을 참으로 만들 수는 없었어요. 아멘에는 스스로의 힘이 없어요. 아멘의 힘은 그것이 동의하는 말씀에서 나와요.

약속을 얻어 내는 방법이 아니에요

“아멘 해야 약속을 받는다”는 말을 들으면 그것을 또 하나의 행위로 바꾸어 버리기 쉬워요. 충분히 했나? 믿음을 충분히 담아서 했나?

고린도후서 1:20으로 돌아가 보세요.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예”예요. 우리의 아멘은 이미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약속을 얻어 낸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값없이 약속하신 것을 받았고, 하나님은 그의 신뢰를 의로 여기셨어요. 믿음은 선물을 받는 손이고, 선물을 받는 데는 값을 치르지 않아요.

아멘이라고 말할 때 달라지는 것

아멘이 동의라면, 마음먹고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을 읽는 방식과 기도하는 방식을 바꿔 놓아요. 형편은 이렇게 말하는데 말씀은 저렇게 말하는 날에 특히 그래요.

약속을 읽고, 동의하세요

성경에서 약속을 읽으면 잠시 멈추고 아멘이라고 말해 보세요. 할 수 있다면 소리 내어서요. 요한복음 5:24 같은 구절을 보세요.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예수님은 그 앞에 겹친 아멘을 두셨어요. 이제 그 뒤에 우리의 아멘을 두세요. 아브라함부터 마리아까지, 성경에서 믿음은 소리 내어 동의하는 방식으로 움직여요. 이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따라 말하는 것이 믿음이 일하는 방식이에요에 더 적어 두었어요.

눈앞의 소식보다 약속을 무겁게 여기세요

어쩌면 지금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을지도 몰라요. 이번 달을 버티기에 턱없이 모자란 통장 잔고를 들여다보고 있을지도 몰라요. 문제는 또렷하게 보여요. 하나님의 약속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견고하게 기댈 곳을 줘요. 아브라함은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있었어요. 그는 자기 나이를 부정하지 않았어요. 약속이 자기 몸보다 더 견고하다고 결정했을 뿐이에요.

다른 이들이 내 팔을 붙들게 하세요

모세는 혼자 손을 들고 있을 수 없었어요. 아론과 훌이 붙들어 주었고, 그의 손은 해가 지도록 든든했어요. 바로 에무나였어요.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아멘이라고 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기 있어요. 혼자서는 믿을 기운조차 없을 때, 교회에 앉아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에 동의하는 소리를 들어 보세요. 그들의 아멘이 내 팔을 붙들어 줄 수 있어요.

아멘을 정직하게 지키세요

바울은 알아듣고 하는 아멘을 원했어요. 강단에서 나오는 모든 말에 아멘을 외칠 필요는 없어요. 들은 것을 말씀에 비추어 시험해 보세요.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맞아떨어질 때, 온전히 동의하세요. 알고 하는 아멘 한 번이 큰 소리로 외치는 아멘보다 값져요.

하나님은 예 하시고, 우리는 아멘 해요

아멘은 작은 말이지만 긴 역사를 품고 있어요. 떠받치다, 견고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뿌리에서 나왔어요. 성경이 믿음과 진리를 가리킬 때 쓰는 말들과 뿌리가 같아요. 이스라엘은 에발산에서 저주에 아멘이라고 했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저주를 지셨어요. 예수님은 약속이 견고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도록 약속 앞에 아멘을 두셨어요. 바울은 이 말을 하나님이 하신 모든 약속과 엮었어요.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이 말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렸어요.

아멘이라고 말할 때마다 우리는 이미 “예” 하신 하나님께 동의하는 거예요. 그분의 약속에 힘을 보태는 게 아니에요. 그 약속에 내 무게를 싣는 거예요.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을 참되게 만드는 말이 아니에요. 그 약속에 내 온 무게를 싣기로 했다는 고백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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