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27 (개역한글)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29 (개역한글)

*이 말씀 때문에 많은 신자가 주의 상 앞에서 뒷걸음질 쳐요. 나는 합당치 않다고 느끼니까요.
그런데 바울은 사람이 합당치 않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합당치 않은 건 방식이에요.
*

원어를 보면 분명해져요.
(아낙시오스) ἀναξίως — “합당치 않게”, 이 말은 부사예요. 어떻게 먹고 마시느냐를 가리키지, 당신이 어떤 사람이냐를 가리키지 않아요. 개역한글도 27절에서 “합당치 않게”라고 옮겨서, 이 말이 사람이 아니라 태도에 붙는다는 걸 그대로 보여 줘요.

그렇다면 그 합당치 않은 방식이란 뭘까요?

바울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이어서 설명해요.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고린도전서 11:29 (개역한글)

고린도 교인들은 구별하지 않았어요.
떡과 잔을 마치 같은 뜻인 양 다뤘어요.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해요.


성경은 언제나 떡과 잔을 나누어요

복음서마다 — 마태, 마가, 누가 — 그리고 고린도전서 11장의 바울의 가르침에서도, 뚜렷하고 한결같은 구분이 있어요.

마태

“예수께서 을 가지사…
을 가지사…”
마태복음 26:26–27 (개역한글)

마가

“예수께서 을 가지사…
을 가지사…”
마가복음 14:22–23 (개역한글)

누가

“또 을 가져 사례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도 이와 같이 하여…”
누가복음 22:19–20 (개역한글)

바울

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을 가지시고…”
고린도전서 11:23–25 (개역한글)

네 사람의 목소리예요.
복음서와 서신, 서로 다른 두 자리예요.
그러나 그 모두를 이끄신 성령은 한 분이에요.

그리고 하나도 예외 없이 같은 순서를 지켜요.
먼저 떡, 그다음 잔. 결코 섞이지 않고, 결코 흐려지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서로 다른 두 선물을 가리키기 때문이에요.

떡은 당신의 몸을 위해 주신 그분의 몸을 말해요.
잔은 당신의 용서를 위해 흘리신 그분의 피를 말해요.

고린도 교인들이 이 둘을 하나로 뭉뚱그렸을 때, 그들은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신 거예요. 거룩함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보는 눈이 흐려서요.


바울이 경고한 건 이것뿐이에요

당신의 실패가 아니에요.
당신의 실수가 아니에요.
당신의 과거가 아니에요.
당신의 성적표가 아니에요.

오직 이것이에요.

그분의 몸이 당신의 몸을 위해 이루신 일을 알아보지 못한 채 떡을 받지 마세요.
떡과 같은 뜻인 것처럼 잔을 받지 마세요.
성경이 거듭 힘주어 지키는 그 구별을 잃어버리지 마세요.

그분의 몸을 분별할 때, 떡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받을 때, 거기에 힘이 따라와요.

당신을 초대하신 분의 가치를 볼 때, 당신은 합당하게 나아가는 거예요.

합당치 않은 방식은 당신이 합당치 않다는 뜻이 아니에요.
떡의 의미를 잊어버렸다는 뜻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