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근이 하는 일은 하나예요. 곳간을 비우고, 물가를 올리고, 선택지를 줄이죠. 모두가 나란히 가난해져요.

그래서 창세기의 세 장면이 눈에 띄어요. 세 사람이 기근을 만났어요. 그리고 셋 다 전보다 더 많은 것을 손에 쥐고 그 시절을 통과했어요.

아브라함은 들어갈 때보다 부해져서 애굽을 떠났어요.

아브라함을 애굽으로 내몬 것은 기근이었어요.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창세기 12:10 (개역한글)

사실 문제의 일부는 그의 지체였어요. 하나님은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하셨는데,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를 데리고 갔고 데라가 죽기까지 여정은 멈춰 있었어요.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닿았을 무렵에는 이미 기근이 와 있었죠. 이 모든 우회가 그의 탓이라고 말해도 할 말이 없어요.

그런데도 하나님은 공급하셨어요.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창세기 13:2 (개역한글)

여기서 "풍부하였더라"로 옮겨진 히브리어는 (kaved) כָּבֵד — "무겁다, 묵직하다"예요. 아브라함은 기근에서 간신히 몸만 빠져나온 게 아니에요. 짐이 무거워질 만큼 싣고 나왔어요. 이게 중요한 이유는, 그의 공급이 완벽한 순종을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것은 아브라함의 전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위에 놓여 있었어요.

이삭은 흉년이 든 그 해에 백 배를 거뒀어요.

한 세대가 지나 흉년이 다시 찾아왔어요.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창세기 26:1 (개역한글)

이삭은 그랄에 머물렀고, 흉년에 제정신인 농부라면 하지 않을 일을 했어요. 마른 땅에 씨를 넣은 거예요.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창세기 26:12 (개역한글)

추수는 "그 해에" 있었어요. 흉년이 끝난 뒤가 아니에요. 비가 다시 내린 다음이 아니에요. 추수와 흉년이 같은 달력을 나눠 쓰고 있었어요. 형편은 한 가지를 말했고, 복은 다른 것을 말했어요.

요셉은 온 세상을 먹였어요.

그리고 가장 혹독한 기근이 왔어요. 칠 년 동안, 모든 땅에 미친 기근이었죠. 하나님은 요셉에게 풍년 칠 년 동안 곡식을 쌓을 지혜를 주셨고, 기근이 닥치자 애굽은 세상의 곳간이 되었어요.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창세기 41:56-57 (개역한글)

그의 가족마저 가나안에서 그에게 양식을 사러 내려왔어요.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한 사람이, 여러 나라를 굶긴 기근보다 오래 버틴 거예요.

한 가지 패턴, 세 세대.

아브라함, 이삭, 요셉. 할아버지와 아들과 증손자예요. 각자 기근을 만났고, 각자 채워져서 나왔어요. 성경이 한 권 안에서 같은 장면을 세 번 반복하니, 우연이라고 부를 수가 없어요.

게다가 이 패턴은 온갖 경우를 다 덮어요. 아브라함은 지체와 불순종을 거쳐 기근 속으로 걸어 들어갔어요. 이삭은 순종했고 그 자리에 머물렀어요. 요셉은 배신을 통해 그 자리에 떨어졌어요. 길은 달랐지만 결말은 같았어요. 하나님이 공급하셨어요.

그러니 당신에게 던져진 질문은 경기가 버텨 줄지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여전히 이 패턴을 지키시느냐예요. 지키세요. 이 패턴은 애초에 좋은 형편 위에 세워진 적이 없으니까요. 그것은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 위에 세워졌어요.

어려운 때는 당신의 공급이 실제로 무엇에 기대고 있는지를 드러내요. 시장에 기대고 있다면 기근이 가져갈 수 있어요. 하나님께 기대고 있다면, 기근은 그저 다음 창세기 26장 12절이 펼쳐질 배경이 될 뿐이에요.

기근은 경제를 재는 자예요. 하나님을 재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