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위에 품으시는 성령

하나님이 한 마디 말씀하시기 전, 빛이 침묵을 가르기 전, 성경은 이 땅의 가장 처음 모습을 뜻밖의 그림으로 보여 줘요.
무질서였어요.
요동이었어요.
구조도 없고, 평안도 없고, 머물 집도 없는 세계였어요.
온 우주가 안식을 찾지 못한 것 같은 상태였죠.
그런데 바로 거기, 그 혼돈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고 계셨어요 (창세기 1:2).
여기서 ‘운행하다’로 옮겨진 히브리어가 (메라헤페트) מְרַחֶפֶת — “알을 품듯 감돌다”예요. 어미 새가 알 위에 앉아 품는 모습을 그리는 말이에요. 데우고, 지키고, 아직 보이지도 않는 생명을 미리 그려 보는 사랑이죠. 개역한글은 이 말을 “운행하시니라”로 옮겼어요. 기적이 형태를 갖추기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사랑의 모습이에요.
우리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와요.
삶이 뒤엉킨 것 같은 계절,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계절, 하나님이 마음에 심어 주신 평안과 모든 것이 어긋난 것처럼 느껴지는 계절이요.
하지만 혼돈이 이야기의 전부였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거기에도 성령이 품고 계시니까요.
기적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순간이 아니라, 성령이 품기 시작하신 순간에 시작됐어요.
그리고 그 품음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이어져요.
하나님의 약속이 살아나는 것을 보려면, 우리도 같은 자리에 초대받아요.
그분의 말씀 곁에 앉는 자리,
곱씹어 묵상하는 자리,
그 약속이 마음을 데워 그림이 될 때까지 머무는 자리로요.
예를 들면 이런 약속이에요.
이 말씀을 품는 거예요.
증거가 눈에 보이기 전부터, 그 말씀이 나를 보는 눈을 바꾸도록 두는 거예요.
품음이 지나간 뒤에야 선포가 있었어요.
성령은 기적이 일어날 자리의 공기를 먼저 준비하셨어요.
마리아에게도 같은 순서였어요. 잉태하기 전, 천사는 성령이 그녀를 이렇게 하시리라 말했죠.
성령이 품으시고… 그다음에 기적이 드러나요.
그러니 삶이 어지럽고, 어둡고, 아직 아무 형태도 잡히지 않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안 계시다는 표시가 아니에요. 오히려 그분이 가까이 계시다는 표시일 때가 많아요.
성령은 이미 거기 계세요. 데우시고, 지키시고, 준비하시고, 혼돈에서 질서를, 흑암에서 빛을 이끌어 내시면서요.
시작은 요동칠 수 있어요. 그러나 성령이 품고 계시고, 빛은 말씀 한 마디 거리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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