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한 마디 말씀하시기 전, 빛이 침묵을 가르기 전, 성경은 이 땅의 가장 처음 모습을 뜻밖의 그림으로 보여 줘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창세기 1:2 (개역한글)

무질서였어요.
요동이었어요.
구조도 없고, 평안도 없고, 머물 집도 없는 세계였어요.
온 우주가 안식을 찾지 못한 것 같은 상태였죠.

그런데 바로 거기, 그 혼돈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고 계셨어요 (창세기 1:2).

여기서 ‘운행하다’로 옮겨진 히브리어가 (메라헤페트) מְרַחֶפֶת — “알을 품듯 감돌다”예요. 어미 새가 알 위에 앉아 품는 모습을 그리는 말이에요. 데우고, 지키고, 아직 보이지도 않는 생명을 미리 그려 보는 사랑이죠. 개역한글은 이 말을 “운행하시니라”로 옮겼어요. 기적이 형태를 갖추기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사랑의 모습이에요.

우리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와요.
삶이 뒤엉킨 것 같은 계절,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계절, 하나님이 마음에 심어 주신 평안과 모든 것이 어긋난 것처럼 느껴지는 계절이요.

하지만 혼돈이 이야기의 전부였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거기에도 성령이 품고 계시니까요.

기적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순간이 아니라, 성령이 품기 시작하신 순간에 시작됐어요.

그리고 그 품음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이어져요.
하나님의 약속이 살아나는 것을 보려면, 우리도 같은 자리에 초대받아요.
그분의 말씀 곁에 앉는 자리,
곱씹어 묵상하는 자리,
그 약속이 마음을 데워 그림이 될 때까지 머무는 자리로요.

예를 들면 이런 약속이에요.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시편 92:14 (개역한글)
이 말씀을 품는 거예요.
증거가 눈에 보이기 전부터, 그 말씀이 나를 보는 눈을 바꾸도록 두는 거예요.

품음이 지나간 뒤에야 선포가 있었어요.

“빛이 있으라” 창세기 1:3 (개역한글)
성령은 기적이 일어날 자리의 공기를 먼저 준비하셨어요.

마리아에게도 같은 순서였어요. 잉태하기 전, 천사는 성령이 그녀를 이렇게 하시리라 말했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누가복음 1:35 (개역한글)

성령이 품으시고… 그다음에 기적이 드러나요.

그러니 삶이 어지럽고, 어둡고, 아직 아무 형태도 잡히지 않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안 계시다는 표시가 아니에요. 오히려 그분이 가까이 계시다는 표시일 때가 많아요.
성령은 이미 거기 계세요. 데우시고, 지키시고, 준비하시고, 혼돈에서 질서를, 흑암에서 빛을 이끌어 내시면서요.

시작은 요동칠 수 있어요. 그러나 성령이 품고 계시고, 빛은 말씀 한 마디 거리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