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이 붙인 이름 말고

여리고라는 도시가 있어요. 역사적으로 저주의 성읍으로 불리던 곳이에요.
예수님은 그 한복판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셨어요.
그날 사람들은 빽빽하게 몰려 있었어요. 웅성거림과 손가락질이 뒤엉켜 있었죠.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사람들에게 그는 배신자였어요. 세리장, 곧 로마에 빌붙어 이웃의 주머니를 털어 부자가 된 사람이었으니까요.
사람들은 "죄인"을 보았어요. 예수님은 다른 것을 보셨어요.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시고 뽕나무 위를 올려다보시며 그의 이름을 부르셨어요. 아무 호칭이나 붙이신 게 아니에요. 히브리 이름 그대로 부르셨어요.
(자카이) זַכָּאי — "깨끗한 자, 무죄한 자, 의로운 자"
그 충격을 상상해 보세요. 군중이 아는 그는 죄인의 우두머리였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깨끗한 자"라고 부르신 거예요. 우리 성경은 이 이름을 '삭개오'로 옮겨 놓았어요. 누가복음 19장에서 직접 확인해 보세요.
유대 법정에서 재판장이 피고를 무죄로 방면하며 망치를 내려칠 때, 이렇게 선고해요. 자카이. 무죄.
예수님은 고소하는 사람들 한가운데 서서,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판결을 내리셨어요. 삭개오가 먼저 돈을 갚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셨어요. 사과를 받아 내신 것도 아니에요. 의롭다는 선언이 먼저였어요.
종교는 말해요. 새 이름을 얻으려면 먼저 행실을 바꾸라고요. 은혜는 새 이름을 먼저 주고, 그 이름이 우리를 바꿔 놓아요.
당신은 군중이 말하는 그 사람이 아니에요. 그분이 부르시는 그 사람이에요.
망치가 내려칠 때, 그 판결은 은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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