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장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쭤요. 왜 무리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시느냐고요. 예수님의 대답 가운데 한 문장에는 말 하나가 빠져 있어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마태복음 13:12 (개역한글)

무엇이 있는 자일까요? 돈일까요? 재능일까요? 마태는 말하지 않아요. 예수님은 그 자리를 비워 두셨고, 읽는 사람은 묻지도 않고 그냥 지나치기 쉬워요.

답은 다른 복음서에 있어요. 씨 뿌리는 비유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모두 나와요. 저마다 다른 복음서가 빠뜨린 대목을 기록해 두었지요. 세 기록을 나란히 펼쳐 놓으면 빈칸이 채워져요.

마가는 ‘무엇을’ 듣는지를 기록해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마가복음 4:23-24 (개역한글)

마가는 듣는 내용에 무게를 둬요. 귀에 무엇이 들어오느냐가 중요해요. 모든 말이 같은 힘을 지니지는 않으니까요. 사람들의 의견도, 뉴스 머리기사도 쓸모는 있겠지요. 하지만 어느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 맺는 열매를 맺지는 못해요.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17 (개역한글)

믿음이 솟아나는 샘은 하나뿐이에요. 그러니 첫 번째 질문은 이거예요. 나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기는 한가요?

누가는 ‘어떻게’ 듣는지를 기록해요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 것을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8:18 (개역한글)

누가는 듣는 태도에 무게를 두고, 그것을 마태복음의 빈칸과 바로 이어 놓아요. “너희가 어떻게 들을 것을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원문에서는 두 문장 사이에 (가르) γάρ —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가 들어 있어요. 개역한글은 이 말을 따로 옮기지 않고 두 문장을 붙여 놓았지만, 원문은 뒷문장이 앞문장의 이유라고 분명히 밝혀요. 있고 없음은 듣는 일에 달려 있다는 거예요.

있는 자는 듣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에요. 말씀을 듣고 싶어 하고, 깨닫고 싶어 하는 사람이지요. 그런 사람에게 더 주어져요.

두 말씀 모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마가는 앞의 절반을, 누가는 뒤의 절반을 적었어요. 둘을 합치면 온전한 가르침이 돼요. 무엇을 듣는지 삼가고, 어떻게 듣는지도 삼가라는 거예요.

둘 다 필요해요

옳은 말씀을 그릇된 자세로 들을 수 있어요. 한 남자가 무릎 위에 성경을 펴 놓고 예배당에 앉아 있지만, 손으로는 회사 이메일에 답장을 쓰고 있어요. 몸은 예배당에 있어도 마음은 콩밭에 가 있지요. 말씀이 귀에는 닿지만 마음에는 닿지 못해요.

그릇된 말을 목마르게 들을 수도 있어요. 한 여인이 끝에 성경 구절 하나 덧붙인 동기 부여 강연을 몇 시간씩 들어요. 마음은 활짝 열려 있어요. 그런데 씨가 없어요.

예수님은 좋은 땅을 이렇게 설명하세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누가복음 8:15 (개역한글)

어느 땅에 떨어졌든 씨는 같았어요. 달랐던 건 그 씨를 받은 마음이었어요.

솔로몬이 구한 것

하나님이 젊은 솔로몬에게 무엇이든 구하라 하셨을 때, 솔로몬은 단 하나를 구했어요.

“그러므로 주의 종에게 깨닫는 마음을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열왕기상 3:9 (NKJV 사역)

“깨닫는 마음”으로 옮긴 말은 히브리어로 (레브 쇼메아) לֵב שֹׁמֵעַ — “듣는 마음”이에요. 솔로몬은 귀 기울이는 마음을 구했어요. 하나님은 그에게 앞선 어떤 왕도 갖지 못한 지혜를 주셨지요. 있는 자에게 더 주어진 거예요.

누가는 마태에 없는 말을 하나 덧붙여요. 헬라어로 (도케이 에케인) δοκεῖ ἔχειν — “가진 것처럼 보이다”예요. 개역한글에서 마태복음 13:12은 “그 있는 것도”라고 하고, 누가복음 8:18은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라고 옮겼으니 두 구절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세요. 여러 해 설교를 들으며 말씀을 손에 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듣는 마음이 없으면, 있는 줄로 알았던 것마저 남아 있지 않아요.

솔로몬이 구한 것을 우리도 구할 수 있어요. 성경을 펴기 전에, 설교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에 두 가지를 살펴보세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인가요? 나는 받으려는 마음으로 듣고 있나요?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세요. “주님, 제게 듣는 마음을 주세요.”

온 무리가 같은 말씀을 들었어요. 그러나 더 받은 사람은 말씀을 받으려고 온 사람들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