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는 그 날을 몰랐어요

창세기 24장에서 아브라함은 이름이 나오지 않는 종을 보내어 아들 이삭의 신부를 찾게 해요. 이 역사 속 이야기는 오늘날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그대로 보여 주는 그림이에요. 이천 년 동안 성령께서는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한 신부를, 곧 교회를 준비해 오셨어요.
이 관계를 이해하려면 고대 유대인의 혼인 풍습을 들여다봐야 해요. 하나님이 사람의 전통을 흉내 내신 게 아니에요. 오히려 하나님이 그 풍습을 세우셔서 당신의 계획을 그려 보이신 거예요. 고대 이스라엘에서 혼인은 정혼으로 시작됐어요. 언약이 맺어지면 신랑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거기서 신부가 살 새 처소를 지었어요.
그동안 신부는 기다렸어요. 신랑이 언제 돌아올지, 그 날과 그 시는 몰랐어요. 집이 다 지어졌는지, 혼인을 치를 때가 되었는지는 오직 신랑의 아버지만 정하셨어요. 아버지가 명하시면 그제야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갔어요.
예수님은 바로 이 풍습을 두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어요.
우리는 지금 그 기다림의 시간 한가운데 있어요. 신부의 값은 예수님의 피로 이미 다 치러졌어요. 예수님은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고 계시고, 성령께서는 우리를 신부로 다듬고 계세요. 그 날이 언제인지 우리는 몰라요. 다만 언제라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된 마음으로 살아갈 뿐이에요.
우리의 소망은 세상이 무너지는 데 있지 않아요. 우리의 신랑이 오시는 데 있어요.
우리는 구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혼인을 기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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