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한번 그려 보세요.

이삼백만 명쯤 되는 사람들이 하룻밤 사이에 종살이에서 걸어 나와요. 벽돌 굽던 사람들이에요. 등이 채찍을 기억하는 사람들이에요. 그 무리 속에는 노인도 있고, 할머니도 있고, 어린아이도 있어요. 그런데 들것 하나가 보이지 않아요. 목발을 짚은 할머니도 없어요. 업혀 가는 사람 하나가 없어요.

"그들을 인도하여 은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 지파 중에 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 시편 105:37 (개역한글)

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어요. 수백만 명 중에 단 한 사람도요.

무엇이 그들의 몸을 일으켰을까요? 무엇이 노예로 살던 한 민족을 행군할 만큼 강하게 만들었을까요?

답은 그 전날 밤에 있어요. 집집마다 어린양을 잡았어요.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어요. 그리고 집 안에서 그 양의 고기를 먹었어요.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출애굽기 12:8 (개역한글)

바깥에 바른 피는 심판에서 그들을 지켰어요. 안에서 먹은 어린양은 또 다른 일을 했어요. 아침이 되자 한 민족 전체가 건강하고 튼튼하게 서 있었어요.

그 첫 유월절은 하나의 그림이었어요. 모형이었어요. 더 큰 식탁의 그림자였어요.

수백 년이 지나, 잡히시던 밤에 예수님이 떡을 드셨어요.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고린도전서 11:24 (개역한글)

예수님은 왜 교회에 한 끼 식사를 남기셨을까요?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아갈지 아셨기 때문이에요. 바이러스가 있고, 종양이 있고, 만성 질환이 있고, 아직 이름도 붙지 않은 병들이 생길 것을 아셨어요. 그래서 당신의 답을 남기셨어요. 찢기신 당신의 몸이에요.

예수님이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요한복음 6:51 (개역한글)

여기서 "생명"으로 옮겨진 말은 (조에) ζωή — "생명"이에요. 성경이 영원한 생명을 말할 때는 (조에 아이오니오스) ζωὴ αἰώνιος — "영원한 생명"이라는 더 긴 표현을 써요. 개역한글은 앞의 것을 "생명"으로, 뒤의 것을 "영생"으로 옮겼어요. 그런데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그냥 조에라고 하세요. 생명 그 자체를 주시는 거예요. 당신의 몸을 위한 생명, 당신의 뼈대를 위한 힘, 당신의 육체를 위한 건강이요.

그러니 이 원리는 그대로예요. 더 많이 먹을수록 더 많은 생명이 당신의 몸에 흘러요. 더 많이 먹을수록 당신은 더 강해져요.

떡 한 조각이 종양과 싸우기엔 너무 작아 보이나요? 하나님은 바로 그렇게 일하세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린도전서 1:27 (개역한글)

하나님은 떡 한 조각을 들어 종양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세요. 예수님의 찢기신 몸은 당신이 먹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약이에요.

그러니 다음에 떡을 손에 들거든 서두르지 마세요. 애굽을 기억하세요. 어린양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주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리세요. "주님의 몸으로 제 질병을, 제 아픔을, 제 고통을 지고 가셨어요. 주님의 채찍 맞으심으로 저는 나음을 입었어요." 주님께 믿고 맡긴 그 문제의 이름을 불러 보세요. 그리고 드세요.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4-5 (개역한글)

어린양을 먹은 다음 날 아침, 이스라엘 중에 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들이 먹은 그 양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어요. 당신 손에는 실체가 놓여 있어요.

그날 밤 이스라엘은 그 힘을 스스로 얻어 낸 게 아니에요. 먹었을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