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는 정직한 방법은 두 가지인데, 대부분은 그중 하나만 가지고 있어요.

첫째는 가까이 들여다보는 일이에요. 한 구절을 붙들고 거기 머물러요. 아침에 읽고 점심때 다시 곱씹어요. 몇 년 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단어 하나가 그제야 눈에 들어와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편 1:2 (개역한글)

이게 현미경으로 읽는 거예요. 넓게 나아가는 게 아니라 한 자리를 깊이 파는 거지요.

둘째는 멀찍이 물러서서 보는 일이에요. 한 권을 한자리에서 통째로 읽고, 그 전체 모양이 마음에 새겨지도록 두는 거예요. 무언가를 들여다보려고 멈추지 않아요.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을 그저 지켜봐요.

모세가 생의 마지막 날에 그렇게 했어요.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산 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남방과 종려나무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신명기 34:1-3 (개역한글)

모세가 섰던 자리에 한번 서 보세요. 느보산은 오늘날의 요르단 땅, 요단 골짜기 위 동편 능선에 있어요. 여리고는 바로 눈앞이에요. 손에 잡힐 듯 가깝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보이신 순서를 보세요. 여리고부터가 아니었어요. 저 북쪽 끝 단에서 시작해, 눈길을 한 바퀴 돌려 남쪽 소알까지 이르게 하셨어요. 가장 가까운 성읍은 거의 마지막에야 나와요.

이게 파노라마예요. 모세는 가장 가까운 것을 보기 전에, 기업 전체를 한눈에 봤어요.

어떤 아침에는 그게 필요해요. 한 구절을 앉아서 쪼개고 싶지 않은 날이 있어요. 룻기를 사십 분 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한 과부가 보리밭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한 가정을 얻어 나오는 것을 지켜보고 싶은 날이요. 룻기의 한 구절만으로는 그게 보이지 않아요. 전체 모양은 멀리 떨어져야 드러나거든요.

또 어떤 아침에는 붙들 한 줄이 필요해요.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1:8 (개역한글)

여호수아는 모세가 건너다보던 바로 그 강, 그 서편에서 이 말씀을 받았어요. 땅을 밟고 차지해야 할 사람에게는 가까이 읽는 법을, 땅을 통째로 봐야 할 사람에게는 멀리 보는 법을 주신 거예요.

여기서 사람들이 걸려 넘어져요. 한 가지 방법을 골라 그것만 옳다고 못 박아 놓고, 다른 쪽이 당길 때마다 죄책감을 느껴요. 그래서 단어 연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책 한 권을 통으로 읽어 본 적이 없고, 통독표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 구절이 마음에 내려앉을 만큼 오래 머물러 본 적이 없어요.

당신에게는 두 렌즈가 다 있어요. 오늘 아침 마음이 당기는 쪽을 쓰면 돼요.

망원경으로는 잎맥을 볼 수 없어요. 현미경으로는 산맥을 볼 수 없고요. 어느 쪽도 고장 난 게 아니에요.

한 구절을 한 달 동안 붙드는 것도, 한 권을 한 시간에 읽는 것도 다 성경 읽기예요. 문제는 렌즈를 하나만 가지고 있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