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경의 날, 망원경의 날

성경을 읽는 정직한 방법은 두 가지인데, 대부분은 그중 하나만 가지고 있어요.
첫째는 가까이 들여다보는 일이에요. 한 구절을 붙들고 거기 머물러요. 아침에 읽고 점심때 다시 곱씹어요. 몇 년 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단어 하나가 그제야 눈에 들어와요.
이게 현미경으로 읽는 거예요. 넓게 나아가는 게 아니라 한 자리를 깊이 파는 거지요.
둘째는 멀찍이 물러서서 보는 일이에요. 한 권을 한자리에서 통째로 읽고, 그 전체 모양이 마음에 새겨지도록 두는 거예요. 무언가를 들여다보려고 멈추지 않아요.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을 그저 지켜봐요.
모세가 생의 마지막 날에 그렇게 했어요.
모세가 섰던 자리에 한번 서 보세요. 느보산은 오늘날의 요르단 땅, 요단 골짜기 위 동편 능선에 있어요. 여리고는 바로 눈앞이에요. 손에 잡힐 듯 가깝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보이신 순서를 보세요. 여리고부터가 아니었어요. 저 북쪽 끝 단에서 시작해, 눈길을 한 바퀴 돌려 남쪽 소알까지 이르게 하셨어요. 가장 가까운 성읍은 거의 마지막에야 나와요.
이게 파노라마예요. 모세는 가장 가까운 것을 보기 전에, 기업 전체를 한눈에 봤어요.
어떤 아침에는 그게 필요해요. 한 구절을 앉아서 쪼개고 싶지 않은 날이 있어요. 룻기를 사십 분 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한 과부가 보리밭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한 가정을 얻어 나오는 것을 지켜보고 싶은 날이요. 룻기의 한 구절만으로는 그게 보이지 않아요. 전체 모양은 멀리 떨어져야 드러나거든요.
또 어떤 아침에는 붙들 한 줄이 필요해요.
여호수아는 모세가 건너다보던 바로 그 강, 그 서편에서 이 말씀을 받았어요. 땅을 밟고 차지해야 할 사람에게는 가까이 읽는 법을, 땅을 통째로 봐야 할 사람에게는 멀리 보는 법을 주신 거예요.
여기서 사람들이 걸려 넘어져요. 한 가지 방법을 골라 그것만 옳다고 못 박아 놓고, 다른 쪽이 당길 때마다 죄책감을 느껴요. 그래서 단어 연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책 한 권을 통으로 읽어 본 적이 없고, 통독표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 구절이 마음에 내려앉을 만큼 오래 머물러 본 적이 없어요.
당신에게는 두 렌즈가 다 있어요. 오늘 아침 마음이 당기는 쪽을 쓰면 돼요.
망원경으로는 잎맥을 볼 수 없어요. 현미경으로는 산맥을 볼 수 없고요. 어느 쪽도 고장 난 게 아니에요.
한 구절을 한 달 동안 붙드는 것도, 한 권을 한 시간에 읽는 것도 다 성경 읽기예요. 문제는 렌즈를 하나만 가지고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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