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너희의 실패를 기념하라.”
너희의 형편을 기념하라.
너희의 씨름을 기념하라.

그분이 하신 말씀은 이거였어요.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누가복음 22:19 (개역한글)

치유는 내 약함을 뚫어지게 들여다본다고 흘러나오지 않아요.
그분의 강하심을 바라볼 때 흘러나와요.

찢기고 갈라져 피 흐르는 그분의 등을 볼 때,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가라앉아요.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5 (개역한글)

앞으로 낫게 될 거라는 말이 아니에요.
히브리어 (니르파) נִרְפָּא — “고침을 받았다”, 이미 끝난 일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개역한글도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지나간 일처럼 적어 놓았어요.
이미 그렇게 됐어요.

잔을 들 때, 용서받기를 바라며 드는 게 아니에요.
이미 용서받았기에 마시는 거예요.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8 (개역한글)

성찬은 나를 들여다보는 자리가 아니에요.
그리스도를 높이는 자리예요.

내 느낌에서 그분이 다 이루신 일로 시선이 옮겨질 때, 거기서 자유가 시작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