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 있다고 해 봐요. 사람은 한 번에 한 방향만 바라볼 수 있어요. 무덤을 마주 보든지, 구주를 마주 보든지 둘 중 하나예요. 둘 다 볼 수는 없어요.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을 앞에 두고 살아요. 저 앞 길 위에 박혀 있는 고정된 지점처럼 여기죠.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한 걸음 더 가까워지고, 건강검진 결과지는 이정표처럼 읽혀요. 그래서 그것을 염두에 두고 계획하고, 그것을 대비해 저축하고, 그것을 두려워해요.

그런데 성경은 신자를 그 길 위의 다른 자리에 세워 놓아요. 사망은 당신 앞이 아니라 등 뒤에 있어요.

왜 그런지 볼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분은 당신의 일부만을 위해 죽으신 게 아니에요. 당신의 영과 혼과 몸을 다 사셨어요. 그리고 그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을 때, 그 부활은 그분의 죽으심이 당신을 위한 것이었던 그대로 당신을 위한 것이었어요. 그분이 사망과 맞부딪히셨어요. 그리고 이기셨어요. 그 대결은 이미 끝났고, 과거에 놓여 있어요 — 예루살렘 성 밖 언덕 위, 역사의 어느 하루에요.

예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24 (개역한글)

여기서 "옮겼느니라"로 번역된 말은 (메타베베켄) μεταβέβηκεν — "건너가 버렸다"예요. 헬라어 완료 시제 동사인데, 이미 끝난 행동인데 그 결과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를 가리켜요. 당신은 믿는 그 순간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너갔고, 지금도 그 건너편, 생명 쪽에 서 있어요. 건너는 일은 이미 등 뒤로 지나간 일이에요.

심판도 등 뒤에 있어요.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개역한글)

이 구절의 순서를 눈여겨보세요. 죄를 담당하시는 일은 십자가에서 단번에 끝났어요. 당신 앞에 남아 있는 것은 법정이 아니에요. 당신 앞에 남아 있는 것은 한 분이시고, 그분은 "죄와 상관 없이"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나타나세요.

구속에는 두 부분이 있어요. 피로 값 치른 구속은 끝났고, 능력으로 이루실 구속은 예정되어 있어요.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영과 혼과 몸의 값을 자기 피로 치르셨어요. 그 지불은 완료됐어요. 다만 사신 것 중 한 부분 — 몸 — 은 그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것이 능력으로 이루실 구속이에요. 이미 사 두신 것을 찾아가시는 날이죠.

그래서 신약성경은 신자에게 무덤 맞을 준비를 하라고 말하지 않아요. 구주를 기다리라고 말해요.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립보서 3:20 (개역한글)

그리고 예수님이 마지막 때를 말씀하실 때, 자기 백성에게 몸으로 하라고 주신 지시가 있어요.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누가복음 21:28 (개역한글)

여기서 "구속"으로 옮겨진 말은 (아폴뤼트로시스) ἀπολύτρωσις — "몸값이 치러져 얻어낸 놓여남"이에요. 몸값은 십자가에서 이미 치러졌어요. 몸의 놓여남은 그분이 나타나실 때 이루어져요. 그러니 예수님은 고개를 어디로 향하라고 하시는 걸까요. 아래가 아니라 위로예요. 뒤가 아니라 앞으로예요.

이건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화요일을 사는 방식까지 바꿔 놓아요. 무덤을 마주 본 사람은 날짜를 세어 내려가요. 구주를 마주 본 사람은 세어 올라가요 — 그분 나타나실 날에 하루 더 가까워졌다고요. 장례식장에서 진짜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면서도, 신자에게 관이 종착역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견디기 힘든 진단서를 읽으면서도, 그것을 내 인생의 마지막 장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할 수 있어요. 신자에게 이야기의 끝은 흙 한 삽이 아니라 하늘에서 울리는 호령이에요.

사망은 옛 길에 속한 것이에요. 당신은 십자가에서 길을 갈아탔어요.

당신은 무덤을 향해 행진하는 사람이 아니라 구주를 기다리는 사람이에요 —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죽음은 이미 등 뒤에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