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쓸수록 멀어지는 치유

때로는 가장 깊은 싸움이 병 자체가 아니에요 —
내가 내 마음에 얹어 놓은 압박이에요.
너무나 낫고 싶어서 애쓰기 시작해요:
내가 충분히 고백했나?
제대로 믿고 있는 걸까?
기도를 충분히 오래 했나?
그렇게 애쓰는 사이 어딘가에서, 안식이 사라져요.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수고가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해요.
히브리서 4:11 (개역한글)
안식에서 수행으로 옮겨 갈 때, 마음은 은근히 신뢰에서 시도로 자리를 옮겨요.
그리고 시도하는 그 자리에서 불신이 자라요.
예수님은 베데스다의 그 사람을 고치시면서 고백하라고도, 무엇을 해 보이라고도, 증명하라고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조차 몰랐어요.
은혜가 그냥 그를 찾아왔을 뿐이에요.
애씀은 믿음을 만들어 내지 않아요 — 믿음을 쥐어짤 뿐이에요.
더 힘껏 애쓴다고 문이 열리지 않아요 — 오히려 닫혀요.
안식한다는 건 치유를 바라기를 그만둔다는 뜻이 아니에요.
안식한다는 건 그것을 내 힘으로 얻어 내려는 시도를 그만둔다는 뜻이에요.
압박이 걷힐 때 다시 신뢰하게 돼요.
죄책감을 내려놓을 때 다시 평안이 찾아와요.
영혼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자리에서 가장 쉽게 낫게 돼요.
믿음을 재는 일을 멈추고,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는 일을 시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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