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은 십계명 없이도 하나님의 임재를 살아 냈어요.

율법이 있기 전에 관계가 있었어요.
하나님이 “간음하지 말지니라” 하고 말씀하시기 전에, 요셉은 이미 하나님이 곁에 서 계신 것처럼 살고 있었어요.

그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게 담겨 있어요.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창세기 39:9 (개역한글)

돌판도 없었어요.
계명도 없었어요.
다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의식 하나뿐이었어요.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한다는 건 무언가를 느끼는 게 아니에요.
한 분을 기억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기억이, 시내 산이 있기 훨씬 전부터 요셉의 선택을 빚어 갔어요.

요셉에게 거룩은 지켜야 할 규칙이 아니었어요.
존중해야 할 한 분이었어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바로 여기 계신다는 걸 알게 되면 이런 질문은 사라져요. “어디까지 죄에 가까이 가도 넘어지지 않을까?”
대신 이렇게 묻게 돼요. “한 번도 나를 떠나지 않으신 분에게서 내가 왜 돌아서겠어요?”

거룩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마음이 삶의 공기가 될 때 가장 잘 자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