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적이 가장 먼저 노리는 것

한 농부가 밭을 걸으며 손으로 씨를 뿌려요. 그중 얼마는 밭 가장자리의 단단한 길 위에 떨어져요. 농부가 한 이랑을 다 뿌리기도 전에 새들이 내려와 그 씨를 먹어 버려요. 그 길에서는 한 철 내내 아무것도 자라지 않아요.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바로 이 장면을 쓰세요.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 새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
마가는 한 가지를 더 기록해요.
사단은 즉시 와요. 씨가 싹 트기를 기다리지 않아요.
요한복음 10:10의 순서
예수님은 다른 곳에서도 원수가 하는 일을 말씀하세요.
순서가 중요해요. 먼저 도적질하고, 그다음에 죽이고, 그다음에 멸망시켜요.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훔칠까요?
우리는 대개 건강이라고 짐작해요. 아니면 결혼 생활이라고요. 혹은 한때 기도하던 아들이 이제는 성경을 책장에 꽂아 둔 채 펴지 않는 일이라고요. 그런 잃음은 아프고,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에요. 하지만 비유는 그가 가장 먼저 노리는 것을 보여 줘요. 그는 말씀을 가지러 와요.
왜 말씀이 먼저일까요
예수님은 이 비유를 한 문장으로 풀어 주세요.
하나님이 당신 삶에 자라게 하시려는 것은 모두 그 씨에서 자라요. 치유는 하나님이 치유에 대해 하신 말씀에서 자라요. 든든한 결혼은 하나님이 사랑과 언약에 대해 하신 말씀에서 자라요. 공급은 공급에 대한 그분의 약속에서 자라요. 추수는 언제나 씨에서 나와요.
마귀도 이것을 알아요. 그는 당신의 몸을, 그다음 가정을, 그다음 통장을 하나씩 공격할 필요가 없어요. 당신 마음에서 말씀을 치워 버리면, 더 이상 열매를 맺을 것이 남지 않으니까요. 능력은 씨 안에 있어요. 그래서 그는 씨를 노려요.
옛 농촌 마을에 쳐들어온 약탈자를 떠올려 보세요. 그는 여름에 밭 하나를 불태울 수도 있어요. 아니면 겨울에 씨앗 곡식을 쌓아 둔 창고를 텅 비울 수도 있어요. 두 번째 약탈은 한 해 동안 모든 밭을 망쳐 놓고, 그는 다시 올 필요조차 없어요. 말 그대로 싹을 자르는 셈이에요.
누가는 그가 훔치는 이유를 알려 줘요.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그는 말씀이 뿌리를 내린 뒤에 일어날 일을 두려워해요. 마태복음 13:19에서 “빼앗나니”로 옮겨진 동사는 (harpazei) ἁρπάζει — “낚아채다, 힘으로 움켜쥐다”예요. 기다리면 무슨 일이 생길지 겁나는 도둑은 재빨리 낚아채요.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
이 도적질에는 한계가 있어요. 마태는 원수가 말씀을 빼앗아 가는 때가 말씀을 “깨닫지 못할 때”라고 말해요. 새들은 단단한 길 위에 드러나 있던 씨를 먹었어요. 좋은 땅에 묻힌 씨를 파내지는 않았어요.
깨달은 말씀은 땅속에 자리를 잡아요. 원수는 더 이상 그것을 겉에서 쪼아 갈 수 없어요. 그러니 하나님께 그분의 말씀을 열어 달라고 구하세요. 한 구절을 천천히 읽으세요.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예수님에 대해 무엇을 보여 주는지 물어보세요.
열매보다 씨를 먼저 살피세요
삶의 어떤 부분이 시들기 시작하면, 우리는 대개 시든 것만 들여다봐요. 건강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묻지요. 그보다 먼저 다른 질문을 해 보세요. 말씀은 어디로 갔을까? 하나님은 내 삶의 이 부분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아직 그 말씀을 품고 있을까?
말씀이 사라졌다면 되찾으세요. 그 필요에 대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성경에서 펴세요. 깨달아질 때까지 읽으세요. 베드로는 당신이 받는 씨가 어떤 씨인지 이렇게 말해요.
원수는 말씀에서 자라나는 것을 원해요. 그래서 말씀을 가져가요. 당신이 말씀을 깨달으면, 그가 주워 갈 것은 하나도 남지 않아요.
원수가 당신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씨를 훔칠 수 있다면, 굳이 열매까지 훔칠 필요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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