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는 말씀으로, 구속은 피로

창조가 하나님께 무엇을 치르게 했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빛은 한마디 말씀으로 지으셨어요.
별도, 바다도, 산도, 은하도 다 같은 방식으로 생겨났어요. 말씀하시니 그대로 섰어요.
애쓰심도, 값도, 희생도 없었어요. 말씀 한마디면 충분했어요.
이번에는 구속이 하나님께 무엇을 치르게 했는지 생각해 보세요.
사람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한마디 말씀을 내려보내 그것을 고치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의 아들이 살과 피를 입고, 십자가까지 걸어가, 그 위에서 죽으셨어요. 창조에는 말씀이 필요했고, 구속에는 몸과 피가 필요했어요.
여기서 "구속"에 해당하는 말은 (엘뤼트로테테) ἐλυτρώθητε, 어근은 (뤼트로오) λυτρόω — "몸값을 치러 풀어 주다"예요. 개역한글은 이 말을 "구속된 것"이라고 옮겼어요. 구속은 사들이는 일이에요. 값이 오갔고, 그 값은 피였어요.
천사들은 사람보다 먼저 반역했어요. 루시퍼가 떨어졌고, 천사의 삼분의 일이 그와 함께 떨어졌어요. 예수님은 그들 중 누구를 위해서도 죽지 않으셨어요.
타락한 천사들에게는 십자가가 없어요. 몸값도 없고, 두 번째 기회도 없어요. 그러나 사람에게는 — 하나님이 친히 손으로 빚으신 피조물, 하나님이 가장 아끼시는 피조물에게는 — 하나님의 아들이 피를 흘리셨어요.
사탄이 당신을 미워하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그는 당신이 하나님께 얼마나 값진지 알아요. 하나님이 그 값을 치르시는 걸 두 눈으로 봤으니까요.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주를 있게 하시면서 한 번도 힘들어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당신을 되사시려고는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셨어요.
당신은 하나님의 계획에서 뒤늦게 끼워 넣은 존재가 아니에요. 당신은 하나님이 피를 흘려서라도 사들이기로 하신 그 사람이에요.
어떤 것의 값어치는 누군가 그것을 위해 치른 값으로 드러나요. 하나님은 말씀이 아니라 피로 당신의 값을 치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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