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을 치르고 떠난 신랑

예수님 당시 갈릴리에서 혼인은 두 아버지가 마주 앉는 것으로 시작됐어요. 두 사람이 혼사를 합의하면 청년과 처녀는 약혼한 사이가 되고, 그날부터 그 여자는 그 남자의 사람이었어요. 약혼은 두 집안을 묶는 일이었어요. 이를 깨려면 이혼 절차가 필요했어요. 그런데도 두 사람은 아직 함께 살지 않았어요.
신랑은 떠나기 전에 신부의 값을 치렀어요. 히브리어로 (모하르) מֹהַר — "신부의 값"이에요. 금일 수도 있고, 여러 해의 노동일 수도 있었어요. 야곱은 라헬을 위해 라반에게 칠 년을 일했지요. 그 값은 신부의 집안에 한 가지를 말해 줬어요. 이 사람은 진심이고, 부양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요.
그러고 나서 신랑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 집을 지었어요. 본가에 방을 이어 붙였어요. 집이 완성되기 전에는 혼인하지 않았고, 완성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건 아버지였어요. 그래서 신부는 그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었어요. 신부가 아는 건 값이 이미 치러졌다는 것과 그가 지금 집을 짓고 있다는 것뿐이었어요. 신부는 저녁마다 등에 기름을 채워 두었어요. 신랑은 밤에 왔고, 집이 준비되었을 때 왔으니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바로 그 일을 하러 간다고 말씀하셨어요.
한 줄 한 줄이 그 관습과 겹쳐요. 아버지의 집, 예비된 처소, 신부를 데리러 오는 귀환, 그리고 마침내 함께 사는 집. 갈릴리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기서 신랑의 말을 들었을 거예요.
바울도 같은 그림을 마음에 두고 편지를 써요.
그리고 그 값은 이미 건네졌어요.
그러니 교회는 언젠가 선택받기를 바라며 서 있는 여자가 아니에요. 교회는 이미 값이 치러진, 약혼한 신부예요. 그분이 오실지 안 오실지는 값을 치르던 그때 이미 끝난 문제예요. 언제 오시느냐는 집에 달렸고, 그건 아버지만 결정하세요.
이 사실이 기다림의 결을 바꿔 놔요. 약혼한 신부는 길가에 앉아 신랑의 마음이 변했을까 헤아리지 않아요. 등에 기름을 채우고 자기 할 일을 하러 가요. 그 확신은 이미 치러진 값 위에 서 있어요. 달력은 거기에 아무 상관이 없어요.
당신은 사랑받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기다리는 게 아니에요. 값은 이미 치러졌고, 신랑은 자기가 값 주고 산 신부를 데리러 반드시 돌아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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