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고난과 형통을 같은 저울에 올려놓고 봐요. 하나의 시간표 위에 나란히 놓고, 둘의 무게가 같은 것처럼 여기죠. 그런데 성경이 그리는 인생의 도형은 조금 달라요.

“악한 날”과 “좋은 날”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에베소서 6:13 (개역한글)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베드로전서 3:10 (개역한글)

에베소서의 “악한 날”은 원어에서 단수예요. (헤메라 테 포네라) ἡμέρᾳ τῇ πονηρᾷ — “악한 그 날”. 한 계절이고, 한 순간이고, 지나가는 폭풍이에요. 반면 베드로전서의 “좋은 날”은 복수예요. (헤메라스 아가타스) ἡμέρας ἀγαθάς — “좋은 날들”. 개역한글은 우리말 어법대로 둘 다 “날”로 옮겼지만, 원어가 말하는 결은 이렇게 달라요. 좋은 날들은 믿는 사람의 인생에서 예외가 아니라 기본값이에요.

염병 같은 위기가 닥치면 영영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져요. 그 하나가 온 시야를 가리고, 우리의 관심과 시간을 통째로 요구하죠.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건짐이고, 또 긴 날이에요.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시편 91:3 (개역한글)

히브리어 (키) כִּי — “정녕, 반드시”는 이 구절 앞에 찍힌 하나님의 마침표 같은 말이에요. 개역한글은 “이는 … 것임이로다”라는 단정의 어투로 이 확신을 살렸어요. ‘혹시’도 아니고 ‘아마도’도 아니에요. 흔들리지 않는 바탕이에요. 공간은 좁아지고 시간은 조여 오는 시절을 살고 있지만, 우리는 그 하나뿐인 “악한 날”을 두려워하며 살라고 부름받지 않았어요.

우리는 “좋은 날”의 사람이에요. 머리기사보다 주님을 더 오래 바라봐요. 입술을 지키고, 반드시 건지시는 그분의 확실함 안에서 쉬어요. 폭풍은 하루지만, 은혜는 한평생이에요.

폭풍은 하나로 지나가는 날이고, 은혜는 날마다 이어지는 약속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