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동산에서 일은 저주가 되었어요. 아담이 넘어진 뒤로 땅은 사람을 밀어냈고, 열매는 “얼굴에 흐르는 땀”과 맞바꾸는 것이 되었어요. 스트레스와 염려, 고된 수고의 무거운 짐이 태어난 자리예요.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창세기 3:19 (개역한글)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또 하나의 동산으로 가 볼까요. 겟세마네예요. 그곳에서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의 고난이 시작되었어요. 기도하시는 동안 그분의 땀은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었어요.

그건 단순히 의학적인 현상이 아니었어요. 구속의 사건이었어요. 예수님의 피가 그분의 이마에서 흐르던 땀과 만나 저주받은 땅에 떨어질 때, 그분은 우리를 고된 노동의 저주에서 건져 내고 계셨어요. 스트레스와 짓누르는 걱정과 “수고로운 땀”을 친히 자기 몸으로 짊어지고 계셨어요.

그러니 이제 일을 그만두라는 뜻이 아니에요. 우리가 하는 일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뜻이에요. 우리는 더 이상 결핍의 두려움에 쫓기지도,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 떠밀리지도 않아요. 불안이라는 “땀”에서 자유로워졌어요. 이제 우리는 밀어붙이는 평강, 곧 우리 마음을 지키는 (Shalom) שָׁלוֹם — “평강, 온전함, 평안”에서 흘러나오는 자리에서 일해요.

애쓰는 건 당신의 선택이지만, 살아남으려 애태우는 스트레스는 이미 깨어진 저주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