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보는 눈, 아들을 보는 눈

십자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이 용서라고 답해요. 어떤 이들은 천국이라고 말하고요.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영적 성숙을 재는 아주 대담한 잣대를 하나 내밀어요. 더 이상 죄를 의식하지 않는 것이에요.
종교는 당신이 늘 자기 더러움을 의식하며 살기를 원해요. 해마다, 주마다, 예배마다 죄를 “기억나게 하는 장치”를 세워 두지요.
하지만 복음은 달라요.
히브리서에서 “단번에”로 옮겨진 헬라어는 이 단어예요. (하팍스) ἅπαξ — “단 한 번으로, 영원히” 개역한글은 이 말을 “단번에”로 번역했어요. 당신의 성경에서 직접 확인해 보세요.
빚이 있는데 갚아졌는지 확인하려고 계속 통장을 들여다본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빚을 의식하며 사는 거예요. 거래가 끝나지 않은 사람처럼 사는 셈이지요.
그런데 누군가 그 빚을 단번에, 완전히 갚아 주었다면 어떨까요. 더는 빚 생각을 하지 않게 돼요. 이제 자유를 생각하기 시작하지요.
하나님은 당신이 자기 마음을 분석하고, 자기 맥박을 짚어 보고, 내 처지가 괜찮은지 걱정하며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세요. 예수님을 바라보기를 원하세요.
사람은 한 번에 두 곳을 볼 수 없어요. 죄를 의식하며 살든지, 아들 되신 예수님을 의식하며 살든지 둘 중 하나예요.
예수님이 이미 다 갚으신 빚, 이제 그만 들여다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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