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버지는 밤마다 아들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기도해요. 그런데 마당에서 아들과 공 한 번 차 준 적이 없어요. 열다섯 살이 되자, 아들은 방문 두드리는 소리만 들려도 한숨부터 나와요.

또 한 아버지는 토요일마다 딸과 레고 탑을 쌓아요. 그런데 딸과 함께 기도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딸은 재미있는 아빠 곁에서 자라지만, 하나님이 자기 말을 들으신다는 건 모른 채 어른이 돼요.

두 아버지 모두 자녀를 사랑해요. 다만 둘 다 해야 할 일의 절반만 했어요.

그리스도인 부모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해요. 함께 놀아 주는 것, 그리고 함께 기도하는 것. 어느 하나만으로는 안 돼요.

기도는 하는데 놀아 주지 않으면, 아이 귀에는 요구 사항만 줄줄이 들려요. 기도가 꼭 성적표처럼 느껴지기 시작하죠. 아이가 자랄수록 그 느낌은 분노로 바뀔 수 있어요. 바울은 아버지들에게 바로 이 점을 경고해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4 (개역한글)

바울은 양육보다 경고를 먼저 말해요. 마음이 상한 아이는 귀를 닫아요. 그러면 아무리 좋은 가르침도 내려앉을 자리가 없어요.

놀아 주기는 하는데 기도하지 않으면, 아이는 친구 같은 부모와 따뜻한 집을 얻어요. 하지만 하나님을 생각할 이유는 얻지 못해요. 자녀를 세상에 내주려고 키우는 부모는 없어요. 그런데 기도가 빠지면, 아무도 그렇게 정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그렇게 돼요.

하나님은 놀이를 조금도 꺼리지 않으세요. 스가랴는 회복된 예루살렘을 이렇게 그려요.

“그 성읍 거리에 동남과 동녀가 가득하여 거기서 장난하리로다” 스가랴 8:5 (개역한글)

하나님이 보여 주신 복된 성읍에서는 아이들이 거리마다 뛰놀아요.

그러니 둘 다 하세요. 바닥에 털썩 앉아서 아이가 고른 놀이를 이십 분만 함께해 보세요. 그리고 잠들기 전에, 놀면서 아이가 들려준 이야기를 가지고 짧은 문장으로 함께 기도하세요. 놀이는 아이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주고, 기도는 그 세계에 하나님을 모셔 들여요.

함께 놀아 주면 아이는 부모가 자기 편이라는 걸 알게 되고, 함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자기 편이시라는 걸 알게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