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드세요, 화면 말고

한 사람이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휴대폰을 열어요. 전쟁 소식, 지진, 새로운 바이러스, 그리고 어떤 지도자가 적그리스도의 특징에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맞는다는 영상까지 손가락으로 쓸어 넘겨요. 아침 식사를 하기도 전에 그는 두려움에 잠겨 있고, 그것을 분별력이라고 불러요.
징조는 진짜예요. 예수님이 오리라고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은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고, 기근과 온역과 지진이 있으리라고 하나하나 말씀하셨어요. 그런 일이 거짓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대신 그 일이 닥칠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명하셨어요.
머리를 들라. 이것이 명령이에요. 화면을 들라가 아니에요. 최신 "바로 이거다" 소식을 찾을 때까지 피드를 새로 고치라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언제 자기 백성에게 예언을 풀어 보겠다고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연구하라고 하셨나요?
이 습관에는 전력이 있어요. 제2차 세계대전 때 예언을 가르치던 이들은 히틀러를 적그리스도로 지목했어요. 모든 묘사에 들어맞는 듯 보였어요. 그런데 그는 베를린의 벙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콧수염 그대로 죽었어요. 적그리스도는 오지 않았던 거예요. 가르치던 이들은 짐작을 했고, 그 짐작의 값으로 사람들은 몇 해를 두려움 속에 살았어요.
성경은 분명 적그리스도가 온다고 말해요. 요한은 이미 많은 적그리스도가 세상에 있다고 써요.
그러니 그는 와요. 하지만 그의 이름이 궁금한 것과 주님을 기다리며 깨어 있는 것은 같지 않아요.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할 때마다 누군가는 손가락질하며 "저 사람이야" 하고 말해요. 판결은 아직 나지 않았어요. 추측은 사람을 지치게 할 뿐, 전보다 조금도 더 준비된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않아요.
성경은 어디에 눈을 고정하라고 말하나요?
징조는 그분을 가리켜요. 징조 자체가 목적지였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지진이 일어날 때, 머리기사가 전쟁을 알릴 때, 예수님이 주신 응답은 하나의 자세예요. 그것도 몸으로 하는 자세예요. 고개를 드세요. 오고 계신 그분을 바라보세요.
꼭 봐야겠다면 머리기사를 읽으세요. 그리고 휴대폰을 덮고 머리를 드세요.
예언은 우리가 위를 올려다보라고 주신 것이지, 계속 화면을 내려보라고 주신 것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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