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적인 설교는 압박과 위협에 기댑니다 — 아니, 기대요. 요구하면 순종이 따라 나온다고 여기지요.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아요. 밖에서 걸어 놓은 규칙은 순종보다 반발을 불러올 때가 더 많아요.

마음이 정말로 바뀌는 자리는 따로 있어요.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는 자리예요.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로마서 2:4 (개역한글)

돌판 앞에서 죄짓기보다, 조건 없는 사랑 앞에서 죄짓기가 훨씬 어려워요. 그리스도께서 내가 받아야 할 심판을 십자가에서 남김없이 지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죄는 매력을 잃어요. 은혜는 죄를 안전하게 만들지 않아요. 은혜는 죄를 역겹게 만들어요.

예수님은 이 원리를 삭개오에게 그대로 보여 주셨어요. 세리에게 돈을 어떻게 다뤘느냐고 따지지 않으셨어요. 그저 함께하자 하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셨지요. 그 사랑이 곧바로 배상을 낳았어요.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누가복음 19:8 (개역한글)

율법은 연약한 사람에게 의를 내놓으라고 요구해요. 은혜는 그리스도를 통해 의를 안겨 줘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면, 마음은 억지가 아니라 저절로 돌아서요.

참된 회개는 율법의 압박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