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안에서, 하나님을 보는 정반대의 두 시선이 맞부딪히는 순간이 있어요.

십팔 년 동안 허리가 굽은 여인이 들어와요.
예수님은 그를 앞으로 부르시고, 손을 얹으시고, 온전히 펴 주세요.

그런데 회당장은 분을 내며 이렇게 말해요: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누가복음 13:14 (개역한글)

그에게 고침은 이었어요 — 사람의 수고에 속한 무엇이었죠.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을 들어 보세요:

“그러면 십 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누가복음 13:16 (개역한글)

두 사람은 같은 낱말을 썼어요. 헬라어 (데이) δεῖ — “마땅히 ~해야 한다”예요. 16절에서는 그 과거형인 (에데이) ἔδει — “마땅히 ~해야 했다”가 쓰였고요.
개역한글은 회당장의 입에 담긴 그 말을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로, 예수님의 입에 담긴 같은 말을 “합당치 아니하냐”로 옮겼어요.

같은 ‘마땅히’인데, 그 사이의 거리가 전부예요.

회당장의 뜻은 이랬어요.
“고침을 받으려면 네가 일해야 한다.”

예수님의 뜻은 이랬어요.
“이 여인은 사랑받는 자이니, 고침받아 마땅하다.”

한쪽은 고침을 노동으로 봐요.
다른 쪽은 고침을 긍휼로 봐요.

한쪽은 규례를 앞자리에 놓아요.
다른 쪽은 사람을 앞자리에 놓아요.

예수님이 “마땅하다” 하실 때, 그 말에는 하늘의 긍휼이 통째로 실려 있어요.
그 뜻은 이거예요. 이 여인이 어떻게 한순간이라도 더 아픈 채로 있을 수 있겠느냐?

회당장이 “사람의 일”이라 부른 것을, 예수님은 아버지의 마음이라 부르셨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이보다 더 환히 보여 주는 건 없어요.

하나님은 당신이 낫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 간절히, 당신을 고치기 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