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귀의 문을 지키세요

한 여자가 6시 40분에 눈을 떠요. 발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손은 벌써 휴대폰을 찾아요. 아침 식탁에 앉을 즈음엔 게시물 마흔 개와 새로운 바이러스 소식 두 건, 생판 모르는 사람이 벌인 정치 논쟁까지 다 읽었어요. 성경은 아직 펴지도 않았고요. 정오가 되자 마음이 천근만근인데, 왜 그런지는 자기도 모르겠어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니에요. 말을 받아들였을 뿐이에요. 그게 전부예요.
귀는 문이에요. 눈도 또 하나의 문이고요. 그 문을 지나는 말은 하나도 빠짐없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요. 그러면 마음은 자기가 품은 것을 그대로 내놓아요.
소셜 미디어 피드도 말이에요. 뉴스도 말이고요. 누구는 새 집을 자랑하고, 누구는 재앙이 온다고 떠들고, 또 누구는 당신이 만나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화를 내요. 말, 말, 또 말이에요. 그 말들이 몇 시간이고 이어지면서 마음에 독을 풀어요. 남과 비교하게 만들고, 낙심을 불러들여요. 어떤 날은 하나님의 자녀를 우울의 늪으로 밀어 넣기도 해요.
열매는 씨앗을 닮아요.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에요. 저녁 내내 똑같은 나쁜 뉴스를 여섯 번이나 들여다보았다면, 스트레스와 혼란, 그리고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이 찾아오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예수님은 이 일에 대해 제자들에게 짧은 당부를 남기셨어요.
그렇다고 앱을 몽땅 지우거나 세상이 멀쩡한 척하라는 말은 아니에요. 우리는 현실 세계에 살아요.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대강 알아 두는 건 지혜로운 일이에요. 친구가 올린 글을 확인하는 것도 해될 게 없어요. 위험한 건 빠져드는 거예요. 스크롤이 시간을 다 가져가고, 하나님의 말씀은 남은 자투리 시간만 받게 되는 거예요.
이 원리는 양쪽으로 다 작동해요. 바울은 낙심이 자라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믿음도 자란다고 말해요.
가장 많이 듣는 것이 가장 깊이 믿는 것을 빚어요. 말이 마음에 들어오느냐가 문제가 아니에요. 누구의 말이 더 큰 몫을 차지하느냐가 문제예요.
그러니 세어 보세요. 휴대폰은 이미 사용 시간을 기록하고 있어요. 스크롤에 세 시간, 성경에 4분이라고 나온다면, 이번 주에 어떤 목소리가 당신을 빚어 왔는지 답은 이미 나와 있어요.
그다음엔 숫자를 바꾸세요. 아침에 피드를 열기 전에 성경 한 장을 먼저 읽으세요. 차 안에서는 뉴스 대신 설교를 틀어 두세요. 같은 이야기를 세 번째 보고 있는 자신을 알아차리면 앱을 닫으세요. 세상보다 말씀에 더 많은 시간을 내어 주세요.
마음은 귀와 눈으로 가장 자주 들여보낸 말을 자라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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