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아홉 살 아들 곁에 앉아요. 아이는 제일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는 중이에요. 정해진 시청 시간이라 아버지는 TV를 끄지 않아요.

아버지는 성경을 펴서 마태복음 4장,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받으신 장면을 보여 줘요. 마귀가 입을 열 때마다 예수님은 똑같이 대답하세요. “기록되었으되.”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4:3-4 (개역한글)

아버지는 작은 낱말 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어요. 마귀가 한 말, “만일”이에요. 헬라어로는 (에이) εἰ — “만일”이고, 개역한글은 이 말을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으로 옮겼어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해요. “‘만일’은 의심이야.” 그리고 거기서 멈춰요. 몇 분이면 끝나는 짧은 가르침이에요.

아이의 눈길이 성경에서 아버지 얼굴로, 그리고 다시 TV로 옮겨 가요. 아무것도 묻지 않아요. 고개도 끄덕이지 않아요.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면, 이 가르침은 허공으로 흩어져 버린 것 같아요.

다음 날, 가족이 볼일을 보러 차를 타고 나가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라, 뉴스에서는 바이러스가 공기로 퍼진다는 소식이 흘러나와요. 아버지가 “만일…” 하고 말을 꺼내요. 그러자 뒷좌석에서 아들이 끼어들어요.

“아빠, ‘만일’은 의심이에요. 주님이 우리를 지켜 주실 거예요.”

TV만 보던 그 아이가 한 마디도 빠짐없이 듣고 있었던 거예요. 기억만 한 게 아니에요. 하루 만에 그 말씀을 실제 상황에 적용했고, 자기 아버지를 바로잡기까지 했어요.

시큰둥한 얼굴이 닫힌 마음은 아니에요

많은 부모가 아이의 표정을 보고 ‘안 받아들이는구나’ 하고 단정해요. 멍한 눈빛, 화면으로 향하는 시선, 으쓱하는 어깨. 그래서 더 좋은 때를 기다려요. 아이가 관심 있어 보이는 순간을요. 그런데 많은 아이에게 그런 순간은 끝내 오지 않고, 부모는 결국 말씀을 한 번도 나누지 못해요.

아이들은 겉으로 드러내는 것보다 훨씬 많이 받아들일 때가 많아요. 어릴 적 교회에서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 듯 느꼈던 순간을 기억하는 어른이 적지 않아요. 그때는 그걸 표현할 말이 없었어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부모님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몰랐지요.

길게 가끔보다 짧게 자주

모세는 부모들에게 날을 잡아 강의를 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하라고 했어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명기 6:6-7 (개역한글)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여기에는 TV 앞 소파도 들어가요. “길에 행할 때에든지.” 가게로 가는 차 안도 들어가요. 이야기 속 아버지는 TV를 끄지도, 가족회의를 소집하지도 않았어요. 말씀 한 구절과 깨달음 하나를 나누고, 아들이 다시 프로그램을 보도록 두었어요.

짧은 말씀은 아이에게 유리한 점이 있어요. 쏙 들어간다는 거예요. 아홉 살 아이도 ‘만일은 의심’이라는 한마디는 하루 종일 머릿속에 품고 다닐 수 있어요. 40분짜리 설교는 그렇게 못 하지요.

자라게 하는 건 씨앗이에요

예수님은 씨를 뿌리고 잠자리에 드는 농부 이야기를 하셨어요.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마가복음 4:26-27 (개역한글)

농부는 뿌리가 잘 내렸는지 보겠다고 한 시간마다 밭을 파헤치지 않아요. 뿌리고, 자고, 일어나요. 그사이 씨는 자라요. 부모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여러분의 몫은 아이 앞에 말씀을 놓아 주는 거예요. 말씀을 자라게 하는 건 여러분의 설득이 아니에요. 말씀 안에는 그 자체의 생명이 있어요.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의 믿음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일깨워 줘요.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디모데후서 3:15 (개역한글)

같은 편지 앞부분에서 바울은 그 성경을 디모데 앞에 펼쳐 준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예요. 두 사람이 성경을 읽어 주는 동안 어린 디모데가 몇 번이나 딴청을 피웠는지는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어요.

미리 포기하지 마세요

시작도 하기 전에 손을 놓는 부모도 있어요. “우리 애들은 관심 없어요.” “눈을 흘길 거예요.” 그럴지도 몰라요. 그래도 말씀을 나눠 주세요. “오늘 성경에서 재미있는 걸 봤어” 하고 두 문장으로 들려주세요.

열매는 그 차 안에서처럼 바로 다음 날 돌아올 수도 있어요. 몇 년 뒤, 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기도하다가 하늘 아버지께서 듣고 계신다는 걸 깨닫는 날 돌아올 수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그 열매는 어느 평범한 오후에 여러분이 심은 씨앗에서 자라요.

아이는 TV를 보면서도 말씀을 듣고 있으니, 망설이지 말고 말씀 한 구절을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