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사람, 아는 사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예수님을 아는 것은 달라요.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깊이 사랑했어요. 많이 용서받은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부활의 아침, 그는 향품을 들고 무덤으로 갔어요. 시체에 바를 준비를 하고 온 거예요. 가슴은 사랑으로 가득했지만, 머리는 죽음으로 가득했어요. 왕을 찾아야 할 자리에서 시신을 찾고 있었던 거죠.
베다니의 마리아는 어땠나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 말씀을 듣던 바로 그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날 아침 무덤 앞에는 그의 이름이 보이지 않아요. 왜일까요?
거기 계시지 않을 줄 알았기 때문이에요.
그는 들었어요. 영적인 분별력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그 안에 자라 있었어요. 다른 이들이 무언가를 하느라 분주할 때, 그는 받아들이는 일에 분주했어요. 죽음이 그분을 붙들어 둘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그분의 마음을 듣는 데 시간을 들였으니까요.
분주함은 분별 없음을 가려 주는 데 아주 능해요.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이미 죽은 상황에 향품을 들고 찾아가요. 그동안 그분은 우리가 앉아서 듣기를 기다리세요. 생명이 어디 있는지 보여 주시려고요.
활동만 드리지 마세요. 귀를 드리세요.
그 발 앞에 앉은 사람이 무덤으로 달려간 사람보다 더 알아요.
이 글이 좋았다면, 매일 아침 이런 짧은 묵상 글을 메일로 받아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