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없는 가지가 아니라, 흙에 묻힌 가지예요

이 구절을 읽고 마음이 따끔했던 적, 다들 한 번쯤 있을 거예요.
“열매가 시원찮으면… 하나님이 나를 내버리신다는 건가?”
그 두려움이 우리를 연기하게 만들어요. 열매를 맺는 대신, 열매 맺은 척하게 만들죠.
그런데 예수님은 한 번도 우리를 위협하신 적이 없어요.
여기서 “제해 버리시고”로 옮겨진 말의 원어는 (아이로) αἴρω예요.
들어 올리다, 일으키다, 들어 나르다, 땅바닥에서 집어 올리다라는 뜻이에요.
개역한글은 이 단어를 “제해 버리시고”로 옮겼으니, 성경을 펴서 직접 확인해 보셔도 좋아요.
그러니까 이 장면은 실패한 가지를 골라내 버리는 농부의 모습이 아니에요.
포도원을 천천히 걷던 지기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서도 흙바닥에 늘어져 있는 가지 하나를 발견하는 장면이에요. 먼지를 뒤집어쓰고, 엉키고,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가지요.
그는 무릎을 꿇고 그 가지를 들어 올려요. 흙을 씻어 내고, 시렁에 묶어 다시 햇빛을 받게 해 주죠.
그분은 당신을 잘라내는 분이 아니에요.
흙에서 집어 올리시는 분이에요.
이게 바로 움직이는 은혜예요.
열매 없음은 힘으로 고쳐지지 않아요.
이를 악문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더 잘해야 해”라는 다짐으로 되는 일도 아니고요.
가지는 더 애써서 이기지 않아요.
나무가 자기를 받쳐 주도록 맡길 때 이겨요.
그리고 우리가 자주 잊는 사실이 하나 있어요.
누구에게나 왕 같은 부르심이 있어요.
요한계시록은 우리를 두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요한계시록 5:10, 개역한글)라고 말해요.
조용한 성격이든 화려한 성격이든, 당신이 생겨 먹은 모양이 당신의 부르심을 무효로 만들지 않아요.
어떤 부르심은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모습이에요.
어떤 부르심은 마지막 볼트 하나를 단단히 조여, 한 아버지가 아이들 곁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하는 정비사의 손이에요.
어떤 부르심은 힘든 하루를 보낸 손님을 알아보고, 그날 그 사람이 받을 유일한 친절을 건네는 바리스타의 미소예요.
어떤 부르심은 사람들이 말로 표현하지 못한 불편을 대신 풀어 주는 디자이너의 작업이에요.
하늘은 그 모든 걸 다 보고 계세요.
그런데 원수는 연결의 힘을 잘 알아요.
그래서 사람을 고립시켜요.
수치심을 들이밀어요.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생각으로도 구석으로 몰아붙여요. 고개를 드는 것보다 그냥 누워 있는 게 쉬워질 때까지요.
그럴 때 다시 포도원지기를 바라보세요.
당신의 약함 밑에 받쳐진 그분의 손을 보세요.
당신을 씻어 내는 그분의 말씀을 들어 보세요.
그분이 당신을 일으키시게 해 드려요.
라합을 기억해 보세요. 자기가 사는 성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할 만큼 망가진 이야기를 가진 여자였어요.
그런데 그 여자가 이 하나님에 대해 듣고… 믿었고… 예수님의 족보 안으로 접붙여졌어요.
하나님은 당신을 멸망**에서** 건져 내시는 데서 그치지 않아요.
당신을 예비하신 **사명으로** 건져 내시는 거예요.
오늘도 포도나무는 낮게 몸을 숙여요. 당신의 빈손을 심판하려는 게 아니라,
당신을 다시 햇빛 아래로 들어 올리려고요.
그분이 당신을 일으키시는 그 순간, 당신의 부르심은 다시 시작돼요.
이 글이 좋았다면, 매일 아침 이런 짧은 묵상 글을 메일로 받아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