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님이 성전에 안겨 들어오시던 그 순간, 아름다운 보초 교대가 일어났어요.

그 자리에 시므온이라는 노인이 있었어요. 평생을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살아온 사람이었지요. 그의 이름 (시므온) שִׁמְעוֹן — "들음"이 말해 주듯, 그는 오래도록 율법과 함께 서 있던 사람이에요. 의롭고 경건했지만, 여전히 기다리는 자리에 있었어요.

시므온은 예수님을 보자 그분을 품에 안고 이렇게 말했어요.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누가복음 2:29-30 (개역한글)

율법이 은혜를 보고 말했어요. "이제 가도 되겠습니다." 율법은 자리를 내어 주는 것을 억울해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했지요. 율법이 짊어진 임무는 우리에게 구주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었으니까요. 구주가 오셨으니, 율법의 당번은 끝난 거예요.

그런데 이야기는 시므온이 떠나는 데서 끝나지 않아요.

바로 그 순간, 한 여인이 들어왔어요. 헬라어로는 안나, 히브리어로는 (한나) חַנָּה — "은혜"예요. 개역한글 누가복음에는 "안나"로 적혀 있으니, 성경을 펴서 직접 확인해 보세요.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저에 대하여 말하니라”
누가복음 2:38 (개역한글)

율법(시므온)이 물러나자, 은혜(한나)가 일어나 말하기 시작해요.

율법은 예수님이 그분이심을 확인해 주지만, 그분을 뭇사람에게 전하는 것은 은혜예요. 우리는 한나의 시대를 살고 있어요. 구원을 눈으로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소망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속량을 이야기하는 시대요.

율법은 평안히 물러가고, 은혜는 능력으로 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