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반대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붙들고 사는가로 — 곧 복음으로 알려져야 해요.

반응이 나를 정의해 버리기는 참 쉬워요.
내가 축복하는 것, 세우는 것, 들고 가는 것보다 내가 반대하는 것으로 먼저 알려지는 거죠.

그런데 바울은 우리의 부르심을 이렇게 말해요.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고린도후서 5:20 (개역한글)

사신은 시위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대표하는 사람이에요. 한 소식과 한 나라와 한 소망을 품고 가는 사람이죠.

교회가 정죄에는 목소리를 높이고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 때, 세상은 소음만 듣고 정작 소식은 놓쳐요.

사람들은 무엇이 망가졌는지 이미 알아요.
그들이 정말 듣고 싶은 건 무엇이 그것을 고칠 수 있느냐예요.

복음이 바로 그 답을 들려줘요.

사신으로서 우리의 목소리는 죽음을 경고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생명을 가리켜야 해요.
발걸음을 부끄럽게 하는 대신 눈을 들게 해야 해요.
적대감이 아니라 소망을 건네야 해요.

우리의 메시지는 “죄를 그만 지으라”가 아니에요.
우리의 메시지는 “구주를 만나 보라”예요.

반대하는 목록이 아니라, 당신이 전하는 은혜로 기억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