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에서 아들로

요즘 교회는 제자훈련 이야기를 쉼 없이 해요.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표를 세우고, 그것을 측정할 시스템까지 갖추죠. 그러면서 이렇게 말해요. "누구나 그리스도인은 되지만, 누구나 제자가 되지는 않는다." 이 한마디에 믿는 이들은 슬그머니 주눅이 들어요.
원어를 한번 들여다보세요. 유대의 랍비는 자기를 따르는 이들을 (탈미딤) תַּלְמִידִים — "학생들"이라고 불렀어요. 제자란 결국 배우는 학생이에요.
십자가 이전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학생이었어요. 랍비를 따라다녔고, 규례를 배웠고, 기적을 곁에서 지켜봤어요. 그러나 아들은 아니었어요. 우리를 양자로 삼으시려고, 예수님은 피를 흘리셔야 했어요.
사복음서는 "제자"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해요. 사도행전도 그래요. 교회가 아직 자기 기초를 배워 가는 중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바울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의 편지를 펼쳐 보세요. 믿는 사람을 규정하는 말로 "제자"가 쓰인 자리를 찾을 수 없어요.
거기서 만나는 말은 다른 것들이에요. "성도", "형제들", "사랑하는 자들". 그리고 (휘오스) υἱός — "아들"이에요. 개역한글은 이 말을 그대로 "아들"로 옮겼어요.
정체성이 행동을 끌고 가요. 학생이라는 자리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불안이 자라요. 학생은 늘 시험을 걱정해요. 낙제 점수를 두려워해요. 그러나 아들은 자기 자리에서 쉬어요. 이 집이 내 집이라는 걸 아니까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걸 알면, 조바심에 시달리는 학생보다 훨씬 빨리 배우게 돼요. 시험에 통과하려고 말씀을 읽는 게 아니라, 아버지를 더 알고 싶어서 읽게 되거든요.
아들이 되려고 공부하는 게 아니에요. 이미 아들이니까 배우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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