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이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불편해지는 사람이 많아요. 탐욕, 이기심, 얄팍한 가르침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에요. 그 불편함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영적인 영역 안에만 가둬 두죠. 하나님이 내 영혼이 잘되기를 원하신다는 건 믿어요. 그런데 몸의 건강과 재정의 필요 앞에서는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아요.

그런데 사도 요한은 자기가 사랑하던 성도들을 위해 아주 분명한 기도를 적어 두었어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삼서 1:2 (개역한글)

요한은 '잘됨'을 영혼에만 묶어 두지 않았어요. 그는 성도들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기도했어요. 여기서 '잘되다'로 옮겨진 헬라어는 (euodoo) εὐοδόω — "길이 형통하다, 순조롭게 풀리다"예요. 요한은 이 한 단어로 삶의 모든 영역에 닿는 온전한 형통을 그려 보인 거예요.

같은 단어 (euodoo) εὐοδόω — "길이 형통하다, 순조롭게 풀리다"를 사도 바울도 헌금을 가르치면서 썼어요.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利)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린도전서 16:2 (개역한글)

개역한글은 이 자리에서 같은 단어를 "이를 얻은 대로"라고 옮겼어요. 성경을 펴서 두 구절을 나란히 놓아 보면 알 수 있어요. 여기서 말하는 형통은 눈에 보이는 물질을 가리켜요. 하나님은 당신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을 놓고 쩔쩔매기를 원하지 않으세요. 가족을 넉넉히 건사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손 내밀 수 있을 만큼 갖기를 원하세요.

성경이 말하는 참된 형통은 재물을 쌓아 두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요. 하나님은 탐심과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미워하세요.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경고해요. 그 움켜쥔 손을 펴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십일조와 헌금을 두셨어요.

우리가 잘되는 이유는 복이 흘러가는 통로가 되기 위해서예요. 내 곳간이 비어 있으면 굶주린 사람을 먹일 수 없어요. 가진 것이 없으면 선교사를 후원할 수도, 가난한 이를 도울 수도 없어요. 예를 들어 한 교회가 필리핀 빈민가의 아이들을 먹이려면 실제 자원이 있어야 해요. 쌀이 있어야 하고, 차가 있어야 하고, 돈이 있어야 해요.

몸의 건강도 이 약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에요. 하나님은 당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당신 안에 은사와 부르심을 넣어 두셨어요. 그 부르심을 살아 내려면 튼튼한 몸이 필요해요. 병은 섬기는 일도, 일하는 일도, 가족을 돌보는 일도 다 붙잡아 매어 버려요. 그러니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건 나만 편하자고 사치를 구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이 땅에서 맡기신 일을 끝까지 해낼 힘을 구하는 거예요.

당신의 영혼은 이미 잘되고 있어요. 당신이 믿는 자이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었어요. 하나님은 당신의 몸과 물질도 그 영적인 실상에 맞춰지기를 원하세요. 그러니 조심스럽게 눈치 보며 기도하지 마세요. 당신의 일과 건강과 가정이 잘되기를 구하세요. 그래서 세상 앞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세요.

하나님이 당신의 삶을 잘되게 하시는 이유는, 당신이 그분의 넉넉하심을 다른 이에게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게 하시려는 거예요.